개판이야기

김두량(金斗樑)의 삽살개(尨)그림...

HL3QBN 2015. 8. 15. 13:46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의 삽살개(尨)그림...

 

1743년(계해) 지본수묵담채, 35*45cm,간송미술관소장...

 

김두량은 조선시대 영조대왕시절에 활약한 화원(畵院) 화가로 자는 도경(道卿), 호는 남리(南里) 또는 예천(藝泉), 산수 및 인물, 영모(翎毛), 신장(神將) 등을 잘 그렸다고 합니다. 외조부인 함제건(咸悌健)은 통신사(通信使)의 수행원으로 1682년 일본에 다녀온 화원(畵員)이며, 부친 김효강(孝綱)도 화원이고. 아들 김덕하도1748년숙종어진 모사에 참가한 화원인것으로 보아 집안이 화업을 대물림한 집안임을 알수 있습니다.
 
남리는 영조가 하사한 사호(賜號)이며, 영조가 친히 제발(題跋)을 쓴 작품(삽살개 그림)도 유존하고 있어서 당시 화가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또 강세황(姜世晃)은 그의 소 그림을 중국 당대(唐代)의 대가 대숭(戴嵩)에 비견하며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김두량은 산수(山水), 인물(人物), 풍속(風俗), 영모(翎毛) 등 여러 방면의 그림에 능숙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북종화풍을 따르면서도 남종화법이나 서양화법을 수용한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목동오수(牧童午睡)>와 <추동전원행렵도(秋冬田園行獵圖)〉 같은 풍속화와 서양화법을 보여주는 〈긁는 개〉 등의 동물화도 전합니다.

강세황은 김두량의 「고사몽룡도(高士夢龍圖」의 발문에서 명수(名手)라 평했고, 임금이 남리(南里)라는 호를 하사했다고 적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김두량은 18세기 화단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대표작에 《월야산수도》가 있으며, 이 밖에도 《춘하도리원호흥도(春夏桃李園豪興圖)》《월하계류도(月下溪流圖)》《고사몽룡도(高士夢龍圖)》《목우도(牧牛圖) 등이 있습니다.

 

삽살개 그림에 있는 영조대왕의 글을 조금 옮겨봅니다.

 

柴門夜直 是爾之任 (시문야직 시이지임)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너의 임무이거늘

如何途上 晝亦若此 (여하도상 주역야차)
어찌하여 낮에 또한 여기 있느냐.

 

癸亥 六月 初吉 翌日 金頭樑圖(계해 유월 초길 익일 김두량도)

계해(1743년,영조19년) 6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이 그림.


참고로 유월'초길'은 당시 초복이 아니었겠냐고 짐작해 봅니다.복날은 경일이 복날이므로 음력 유월~칠월사이였습니다.

대개 '初朔(초삭)'으로 써야 하지만 굳이 처음 길일 다음날이라고 하였습니다.이것은 '용케 살아남았다.'로 풀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제의 풀이로 봐서는 '워낙 영민한 개이니 차마 잡아 먹을 수 없었다.'라고 해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기 넘치는 그림이 나오려면 그림 솜씨도 뛰어나야 하지만,오랜 관찰을 통해 개의 생김새를 완전히 익혀야겠죠.
이 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두량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 합니다.

 

재치(財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