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1651년 별시 무과 급제자 위상표(魏尙彪 22세 행원문중)선조님은 장흥위씨 족보 기묘대동보(1999년 발행)에는 이름이 없다...

HL3QBN 2025. 9. 26. 19:25
1651년 별시 무과 급제자 위상표(魏尙彪 22세 행원문중)선조님은 장흥위씨 족보 기묘대동보(1999년 발행)에는 이름이 없다...

1651년(효종2년)에 치러진 과거 별시에 장흥위씨는 총3분이 무과에 급제하셨는데 위상표(魏尙彪 22세 행원문중), 위종(魏鍾 23세 장천문중 판사공파), 위사박(魏士璞 26세 사월문중 덕원부사공파)입니다.

윗글에서 특이하게 두분은 문중과 종파가 있는데 위상표선조님은 문중은 있지만 종파가 없습니다...

위상표선조님(행원문중 22세)은 1617년생으로 역시나 무과에서는 전체 128위/1236명의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위대황(魏大荒 행원문중 21세)이며 형제는 형으로 위상의와 위상준이 있습니다...

 

하지만 1999년 발행된 장흥위씨 기묘대동보 1권 18~19페이지에는 '아버지 '위대황'만을 찾을 수 있으나 후손이 없다는 '무후(無後/无後/无后 대를 이을 후손이 없음)로 기록했습니다...물론 어디에서도 위대황의 아들 '위상표'를 찾을 수 없습니다.

 

1759년 발행된 장흥위씨 최초의 족보 '기묘초보'에는 위대황과 그의 첫째아들 위상의 둘째 위상표(무과) 셋째 위상준(무과)으로 기록했습니다.(무과방목에는 위상준도 형으로 기록되어 있음)

또한 위대황(21세)의 첫째아들 위상의(22세)의 후손은 23세 위중일, 24세 위진웅, 25세 위시영까지 이어지다가 출계(出系 양자로 다른집에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되어 위대황선조님의 가계는 결국 끊어지고 없어지고 말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시영선조님은 어디로 출계되었을까?...

1759년 기묘초보에는 위대기선조님 집안의 계자(繼子 아들이 없는 집에서 대를 잇기 위하여 동성동본 중에서 데려온 조카뻘 되는 남자아이)로 갔음을 기록했습니다.

 

1999년 기묘대동보에서도 '위시영'이 계자로 기록했고 그의 생부가 '위진웅'이라는 것도 기록했습니다.

 

위대기선조님의 무과방목등 여러 기록을 종합하면 행원문중 20世 위문보((魏文甫)의 아들은 1. 위대정((魏大貞) 2. 위대기((魏大器 충청수사공파조) 3. 위대택((魏大澤) 4. 위대우((魏大宇) 5. 위대주((魏大宙) 6. 위대홍((魏大洪 부장공파조) 7. 위대황((魏大荒)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족보에는 위대정과 위대우가 빠져 있고, 위대황의 아들도 상의, 상표(1617년생) 상준으로 3명이 있지만 1999년 기묘대동족보에는 실리지 않고, 무후라고 했음. 우주홍황은 천자문에도 나오는데 이를 이름자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상표선조님은 무과에 급제하셨지만 후손이 없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1세 위대황선조님의 집안이 이어져 오다가 25세때에 위대기선조님의 집안으로 양자가는 바람에 계열 전체의 대가 끊어져 버려서 장흥위씨에서 잊혀져 버렸고 관계되는 후손이 없어서 선조님을 조명하는 경우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충청수사공 위대기장군의 큰아들(휘 정원)계열은 결국 위대황선조님의 계열에서 양자 받아서 대를 이어오고 있는 것 입니다...

위대기장군의 둘째아들(휘 정현)계열은 현재 경남 통영 덕치를 중심으로 살아왔습니다.위대기장군의 큰아들 위정원과 둘째아들 위정현선조님은 장흥에서 웅치로 이거하여 살다가 위정현선조님은 위대기장군의 녹권1권을 지니고 경남 통영으로 고성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후손들이 계보를 잃고 위정현선조님의 아내 전주이씨 성으로 살아오면서 대를이어 독자로 5대를 내려오면서 넉넉치 못하게 살아 천리가 떨어진 고향을 왕래하지 못하여 족보에 참여하지 못하고 오던중 1957년 정유년에 행원파 파보를 한다는 연락을받고 준비한 가승을 갖고 처음으로 족보에 기록하게 되었다. 그때의 족보 추진위원회 도유사는 행원문중 33세 위일환이었습니다.

어제(9/25) 통영 종중 문임을 맡고 있는 위점기종친(35세)에게 안부 연락을 했더니 건강이 안좋아서 앞으로는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위형기(35세)종친이 문사를 맡을 것이라고 해서 통화를 하고 향후에 계속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후손이 없어서 잊혀진 한 분을 찾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이것저것 자료를 찾고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자문 : 호산 위신복 족보편찬연구위원

탁마재 재치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