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남포현감공 진무녹권 유실 사실(藍浦縣監公振武錄券遺失事實)"

HL3QBN 2025. 10. 1. 08:00
애타는 마음을 올립니다...

장흥위씨 행원문중의 파보는 1931년 1957년 1990년 발행되었습니다. 그중 1957년과 1990년 파보에 실린 "남포현감공 진무녹권 유실 사실(藍浦縣監公振武錄券遺失事實)" 이라는 애타는 글이 있습니다.

장흥위씨 행원문중 괴봉공파 남포현감공(23세 휘 정보 1596 ~1644)의 진무원종공신녹권을 소장하고 있던 계암공(溪巖 32세 휘 희량1888~1953)이 족형 시량공에게 빌려주고 되돌려받는 과정에서 어찌어찌해서 결국 유실했다는 내용으로 애끓는 사연에 숙연해집니다...

혹여나 종친중에 소장하시거나 발견하신 분이 계시면 남포현감공 본가로 돌려주어 불초한 죄를 면하기를 소원한다고 적었습니다.

혹시 이번 추석 명절에 잊혀진 귀한디 귀한 고문서나 고서가 있는지 집안을 잘 살펴봅시다...

아래 사진은 다른분이 받은 진무원종공신녹권에 등재된 남포현감공의 휘자(이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포현감공 진무녹권 유실 사실
(藍浦縣監公振武錄券遺失事實)

嗚呼라 나의 九代祖 藍浦縣監公께서 文行과 武藝로 一世를 용동(聳動)하였는데 천계(天啓) (明나라 熹宗年號) 甲子亂(仁祖二年 西紀 一六二四 李适亂)에 張晩 都元帥의 部將으로 偉功을 여러번 세워 振武原從一等勳에 記錄되고 錄券을 下賜받아 代代로 遺傳하여 三百年 가까이 오래되어 편장(編章)이 좀이 먹고 책맨꾼인 오사(烏絲)가 패몰(敗沒)한고로 詩傳草謄한 종이로 章章마다 풀로 修理하여 貴中하게 保存해 왔는데 지나간 戊申年間에 族兄 時良氏가 보고자하여 빌려달라 함으로 臨時로 빌려 주었는데 바로 돌려 받지 못하고 서로 傳해오든中 착오(錯誤)가 생겨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數年이 되도록 아직 찾아 奉安치 못했으니 極天痛恨이 과연 어떻하겠는가 嗚呼라 公은 間世의 재조로서 여러번 功勳을 세워 나라에는 忠臣이 되고 家門에는 顯祖가 되는데 그 本孫된자 先祖의 行蹟을 유루(遺漏)한 罪 도망할곳이 없는지라 그러나 오직 願하옵건데 여러 宗親들은 혹시 라도 얻어본다면 本家에 돌려보내여 不肖한 罪를 免하기를 千萬 仰望하옵고 혹시나 우리 先祖의 영이 묵묵(默默)히 명명(冥冥)한 가운데 도우신다면 반드시 장차 나오리라. 九代孫 禧良 謹識
 
남포현감공(23세 廷寶, 1596~ 1644)의 初諱는 하보(河寶)요 자는 자고(子固)며 호(號)는 퇴우당(退憂堂)이다. 군자감정 弘宙의 子, 형조참의 大用의 孫子며, 문화현령공(諱 山寶)의 동생이다. 광해군 12년(1620년) 문화현령공(諱 山寶)와 함께 무과에 급제하였다. 인조 1624년(甲子) 이괄의 난 때 도원수 장만(張晩) 막하에서 功을 세워 진무원종일등훈(振武原從一等勳)에 록(錄)되고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1634년(甲戌) 남포현감(藍浦縣監)에 제수됐다. 졸 후 석천사(石川祠)에 배향됐다.

집안에서나 또는 어디에서든 '남포현감공의 진무원종공신녹권'의 소재를 아시거나 조금의 단서라도 제보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탁마재 재치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