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정강 김주현이 남긴 탐승록에 나오는 장흥위씨...

HL3QBN 2025. 10. 3. 15:08
정강 김주현이 남긴 탐승록에 나오는 장흥위씨...

탐승록(探勝錄)』은 장흥군 용산에 살던 정강 김주현(定岡 金冑現, 1890~1950) 선생의 기록이다. 1935년 4월 28일 9시 용산면 국정을 출발해 서울과 인천, 개성, 금강산을 돌아보고 5월 15일 돌아 오기까지 14일간의 여행 기록이다. 『탐승록(探勝錄)』이라 제하여 정강의 시문집에 들어 있다. 발간은 되지 않고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처음 출발한 국정(麴亭)은 당시는 장흥군 남면 접정리를 말하고 누룩쟁이라 하였다. 남면은 1940년에 용산면으로 개칭한다. 국정에서는 정기차를 탄다. 대덕-장흥간 정기 버스이다. 장흥 읍내 자동차연합소에서 여기 저기서 온 사람들을 만나서 대절차로 출발했다. 이정원, 이직원, 김주현, 화승 이병룡, 이병운, 송재우, 위복량, 위계창, 위계중, 죽암 위계문, 오헌 위계룡, 위준식 등 모두 열세명이다.(한 명은 기록이 없다.) 자동차연합소는 칠거리에 있었을 듯 싶다.


언젠가는 차를 타고 차분하게 세상 풍물을 보며 감상하고 싶다. 이제야 출발. 여러 벗들과 함께 만난다. 영산포에 이른다. 이윽고 역이다. 이제 저 큰 도회와 역사 현장을 보리라. 생각만해도 세상이 확 트인듯하다. 어쩌면 영산간 다리를 건너면서 느낀 확트임일 수도 있겠다. 이윽고 기차가 들어 온다. 기적소리 길게 울린다. 곧 출발한다는 것. 연기인지 먼지인지 사람들이 몰려든다. 승객들이 바삐 움진인다. 내리는 이 별로 없고 대부분 타는 사람들이다. 향촌 선비의 눈에 비친 영산포역 경관이다.

이윽고 한 밤. 8시 51분 직행 기차를 탄다. 어쩌면 장흥 선비들은 밤새 이런 말 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점심 때 막걸리를 마셨고 기차속에서는 소주를 곁들었을 것이다. 집에서 고이 싸준 육포 등 여러 안주와 함께 밤새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기차는 밤새 달려 다음날 아침 4월 29일 7시 경성의 남대문 역에 이르렀다.

서울 도착해 인천을 들르고 금강산 여행을 마치고 5월 11일 남대문역에서 밤11시 기차를 타고 남행을 한다. 영산포를 도착한 것은 다음날 12일 아침 8시쯤이다. 꼬박 9시간을 달린 것이다. 장흥관에 들러 아침밥을 먹고 대절차로 출발한다. 장흥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영산포 역인지라 식당마저 장흥관(長興館)이다.

장흥 읍내 도착하니 마침 장날이었다. 당시 단발장려대(斷髮奬勵隊)가 동교다리 건너 칠거리쯤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동교 다리 조금 못미처 하차하여 기다리다가 오후 3시 대덕행 차를 타고 14일만에 돌아 왔다. 1935년 시절에도 장흥 사람들은 단발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여행 일행 중에도 여러사람이 상투 복장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주현의 『탐승록』은 필사본으로 1면에 10행 20자로 20장 분량이다.

정강은 일상을 세밀하게 기록을 한 분이다. 1938년 5월 22일부터 1948년 12월 30일까지 10년 7개월 동안의 일기를 남겼다. 이 『정강일기』는 장흥 지역 근현대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국역본을 발간하였다.

14일간 장흥 선비들의 경성과 인천 그리고 금강산을 둘러보는 짧은 여행기에서 등장하는 장흥위씨 6분의 흔적입니다.

김희태 前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의 블러그(https://kht1215.tistory.com/1527)에 있는 글을 조금 손봐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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