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년 무과 급제자 위종(魏鍾) 선조님을 아십니까?
1651년(효종2년)에 치러진 과거 별시에 장흥위씨는 총3분이 무과에 급제하셨는데 위종(魏鍾 23세 장천문중 판사공파), 위상표(22세 행원문중), 위사박(26세 사월문중 덕원부사공파)입니다.
위사박선조님은 지난번에 조금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위종(魏鍾) 선조님이신데 별시에서 병과 23위 전체 1236명중 54위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했습니다.

장천문중 오덕중 장자인 판사공(21세 휘 덕홍) 삼자(휘 정민)의 아들인 위종 선조님의 자는 훈중, 을묘 1615년(광해군7년) 생이며 본관 장흥 거주지 장흥입니다. 전력은 정로위(군사조직), 1651년 현재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아버지는 위정민, 동생은 위탁이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1999년 장흥위씨 족보 기묘대동보(1권 326페이지)에는 무과 급제와 봉사(종8품) 품계와 병자호란때에 공적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병자호란(1636~1637)때의 공적은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동생 '위탁'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형 '위침'이 무과에 급제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형 '위침'의 무과 급제사실은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위종의 아들 '세칠'과 손자 '명보'에 대한 이름만 기록되었을 뿐 다른 기록은 없읍니다. 위종의 아버지 '위정민'의 후손도 26세이후로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1759년 장흥위씨 최초의 족보 기묘초보에는 '위종'의 형 '위침' '위영' 그리고 동생 '위탁'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위종선조님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등에서는 기록없어서인지 기록을 확인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여년의 종친활동을 하는 동안 위종선조님을 언급하거나 이분 한 분에 대해 조명한 기록을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아마도 기록이 미비하고 후손이 없기 때문일거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며칠동안 약간의 검색과 책장 몇장을 넘기면서 위종선조님의 기록을 찾아보는 동안 답답함과 즐거움이 같이 했습니다...
어느날이라도 불쑥 위종선조님에 대한 기록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탁마재 재치 위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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