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淵谷書院春享韻(연곡서원춘향운))(三足堂(삼족당) 魏世寶(위세보))...

HL3QBN 2017. 1. 5. 23:08

장령시문(長寧詩文, 저자 김규정) 위문관련 시문(9)


淵谷書院春享韻(연곡서원춘향운)

연곡서원 춘향제 시운으로 읊다.


三足堂(삼족당) 魏世寶(위세보 1669 ~ 1707)


廟貌端嚴氣價象(묘모단엄기가상)

서원 단정 장엄한 기상 본받을만하니


信知模範不踰規(지모범불유규)

법도 넘지 않는 모범은 진실로 알겠다.


死存明祀逢休世(사존명사봉휴세)

좋은 세상만난 생사존망 정결한 향사


生導斯文致盛時(생도사문치성시)

치성드릴 때 사문들 저절로 인도한다.


淸誨縱垂來學啓(청회종수래학계)

맑은 가르침 전해 후학 계몽하니


道心難與後人持(도심난여후인지)

도심은 뒷사람들과 지속하기 어렵겠다.


靑山不老江流闊(청산불노강유활)

청산은 늙지 않고 강물 넓어지는데


血食千千萬萬期(혈식천천만만기)

혈식 천향 천천만만 세를 기약한다.


注)

血食 - 혈(血)은 제사(祭祀)에 바치는 생(牲)을 뜻한다. 국가에서 거행하는 제사.


연곡서원(淵谷書院, 전라남도 기념물 제18)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원도리에 위치한다. 1698년 민정중(閔鼎重, 1628~1692, 여흥, 老峯)을 추모키 위해 지방 유생들이 창건한 후 1716년 동생인 민유중(閔維重, 1630~ 1687, 인현왕후의 로 숙종의 장인)을 추가 배향(配享)하고 1726(영조2) "연곡"이라 사액(賜額)되었고 1868(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뒤 1904년 이후 복원되어 현재 민정중을 주벽으로 동생인 민유중, 민정중의 애제자 이민기(李敏琦, 1646 ~1704)등 세분을 祭享한다.


魏世寶(위세보 24세 장천문중 안항공파 현종10년 1669 ~  숙종33년 1707) 향년 39

字는 국미(國美), 號는 삼족당(三足堂).석병(石屛).본관은 長興,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서 위동식(魏東寔)과 영광김씨(靈光金氏) 부산파(夫山派) 김진(金振)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詩.書.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작은 집이지만 운신할 수 있으니 족하고 끼니를 이을 수 있는 전답이 있으니 족하고 시와 서를 접할 수 있으니 족하다하여 삼족당(三足堂)이라 自號했다.

21세 때(숙종15년 1689) 靈光金氏 김정길(金鼎吉)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30세 때 (숙종24년 1698) 부인 金氏가 세상을 떠나자 아우 춘담공과 살림을 합쳐 같이 살았다.

31세(숙종25년 1699) 水原白氏 백명시(白命蓍)의 딸에게 다시 장가 들었다.

39세(숙종33년 1707) 가을에 장천재에서 요병했고 겨울에 삼족당에 돌아와 임종구호 시 1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짧은 인생을 깨끗하고 선량하게 산 시골의 선비로 그가 남긴 예술혼은 꺼지지 않고 지금까지 신화로 전해온다.

삼족당이 영이재를 낳고 3년후 타계했다. 이후 후사가 없는 동생 세린이 큰집과 살림을 합쳐 조카 영이재를 가르쳤다.

가학을 일으키자 아들 영이재 위문덕,손자 위백규,서계 위백순이 세상에 알렸다.


재치(財痴) 쓰고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