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魏丈 德寬 挽 魏丈八十喪室用慮未一秊亦喪逝古末句云 (소은(素隱) 신천익(愼天翊 1592 ~ 1661))

HL3QBN 2016. 12. 16. 20:01

장령시문(長寧詩文, 저자 김규정) 위문관련 시문(6)


魏丈 德寬 挽 魏丈八十喪室用慮未一秊亦喪逝古末句云 (위장 덕관 만 위장팔십상실용려미일년역상서고말구운)

위씨 어른 덕관을 애도하다.

위씨 어른이 여든인데 아내의 상을 당해 마음이 쓰였다.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또 세상을 떠나서 끝구에서 언급했다.


소은(素隱) 신천익(愼天翊 1592 ~ 1661)


白面美鬚髥(백면미수염)

하얀 얼굴에 아름다운 수염


軒然好身手(헌연호신수)

신체가 늠름해 외모가 준수하다.


平生萬卷書(평생만권서)

평소 만권의 책을 읽고


稍得觀覽富(초득관람부)

실컷 구경해 조금 깨우쳤다.


茂族鬱鄕閭(무족울향려)

고을에서 성대한 벌족이라


追隨數先後(추수수선후)

사람들 자주 앞뒤 따른다.


已見內外孫(이견내외손)

이미 내외손에 드러나니


耕漁足(경어족수수)

밭 갈고 고기 잡아 수수 잘한다.


人生固有涯(인생고유애)

인생은 본래 끝이 있거늘


誰能期頣壽(수능기신수)

누가 능히 백세를 기약하나.


八十居然逝(팔십거연서)

여든에 갑자기 서거하시니


二子在左右(이자재좌우)

두 아들은 좌우에 있구나.


鬱彼獅子麓(울피사자록)

울창한 저 사자산록은


山水亦佳趣(산수역가취)

산수도 아름다운 흥취 이룬다.


千秋一丘土(천추일구토)

영원히 한 언덕 흙에 묻히니


屹爾雙蒂(흘이쌍체)

우뚝한 두 부부는 짝지어갔다.


悲歎今一夢(비탄금일몽)

비탄해도 이제 한바탕 꿈이라


宿昔浪自  (숙석랑자구)

옛날을 부질없이 허물합니다.


瞻望挹餘徽(첨망읍여휘)

남긴 풍화 바라보고 생각하며


荒辭代鷄酒(황사대계주)

거친 글로 계주를 대신하옵니다.


注) (수수) -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는 일.

鷄酒(계주) - 척계두주(隻鷄斗酒) 혹은 적계서주(炙鷄絮酒)의 준말로 변변찮은 제사 음식을 말한다.


* 신천익(愼天翊 선조25연 1592 ~ 현종2년 1661) 향년 70

본관은 거창(居昌).字는 백거(伯擧),號는 소은(素隱).父는 진사(進士) 신인(諲)이다. 전라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서 살았다.

20세 때(광해군4년 1612) 壬子 式年試(進士) 2等 21位(26/100)이고 같은 해 壬子 增廣試 乙科 4位(7/33)로 합격했다.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사직해 전라도 영암 三友堂에 은거하였다.

신천익은 昏朝에 발들이지 않았고 효종5년(1654)에 다시 출사하여 홍문관 부제학을 지내고 대사간,이조참의가 되었다.효종10년(1659)에 이조참판에 서임되고 이어 한성부 우윤에 특제(特除) 되었다.


* 위덕관(魏德寬) 號는 雲巖.副護軍.전라도 장흥부 부산방 기동리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