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시문(長寧詩文, 저자 김규정) 위문관련 시문(8)
贈老釋(증노석)
원로 납승에게 드리다
.
三足堂(삼족당) 魏世寶(위세보 1669 ~ 1707)
何處名僧到此閒(하처명승도차한)
명승은 어디서 이곳에 오셨나
胸衿蕭㿛出塵寰(흉금소려출진환)
청정한 흉금은 티끌세상 벗어났단다.
衲衣滿帶松雲宿(납의만대석송운숙)
납의 잔뜩 두르고 솔 구름에 자고
錫杖多穿水蘇斑(석장다천수소반)
석장은 뚥린데 많아 들깨 무늬 같다.
足躡山千心不俗(족섭산천심불속)
발걸음 온 산하 미치나 마음은 속세 떠나
手持瓢一道無艱(수지표일도무간)
손에 지닌 한 표주박은 도 어려움 없다.
論詩便覺開靑眼(논시편각개청안)
시 말하다 문득 깨쳐 청안 열리니
暫得禪窓半日閒(잠득선창반일한)
잠시 선방에선 반나절이 한가롭다.
注)
瓢一(표일) - 송나라 도학자 나종언(羅從彦)의 <독락재(獨樂齋)>에 "나를 인정하는 이 적음을 아니 참으로 자신이 가소로우나 그래도 안자(顔子)의 단표가 있어 일미가 유장하도다.<自知募與眞堪笑 賴有顔瓢一味長>" 하였다.
魏世寶(위세보 24세 장천문중 안항공파 현종10년 1669 ~ 숙종33년 1707) 향년 39
字는 국미(國美), 號는 삼족당(三足堂).석병(石屛).본관은 長興,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서 위동식(魏東寔)과 영광김씨(靈光金氏) 부산파(夫山派) 김진(金振)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詩.書.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작은 집이지만 운신할 수 있으니 족하고 끼니를 이을 수 있는 전답이 있으니 족하고 시와 서를 접할 수 있으니 족하다하여 삼족당(三足堂)이라 自號했다.
21세 때(숙종15년 1689) 靈光金氏 김정길(金鼎吉)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30세 때 (숙종24년 1698) 부인 金氏가 세상을 떠나자 아우 춘담공과 살림을 합쳐 같이 살았다.
31세(숙종25년 1699) 水原白氏 백명시(白命蓍)의 딸에게 다시 장가 들었다.
39세(숙종33년 1707) 가을에 장천재에서 요병했고 겨울에 삼족당에 돌아와 임종구호 시 1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짧은 인생을 깨끗하고 선량하게 산 시골의 선비로 그가 남긴 예술혼은 꺼지지 않고 지금까지 신화로 전해온다.
가학을 일으키자 아들 영이재 위문덕,손자 존재 위백규,서계 위백순이 세상에 알렸다.
재치(財痴) 쓰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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