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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누정 순례4...송강정(松江亭)

HL3QBN 2016. 6. 2. 10:41

전남 담양 누정 순례4...송강정(松江亭)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송강정로 232 (광주와 담양간 도로변에 있습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1972.0.29 지정)


송강정(松江亭)은 環碧堂(환벽당), 息影亭(식영정)과 함께 정송강유적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이 선조 18(1585) 대사헌에서 물러나 4년 동안 이곳에 머물다 간 적이 있었던 탓으로

본래 이름인 竹綠亭(죽록정)을 버리고 송강정으로 바꾸었습니다. 지금도 정자의 정면에 '松江亭(송강정)'이라고 새겨진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竹綠亭(죽록정)'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으여, 멀리 무등산이 바라보입니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甑岩川(증암천)송강(松江) 또는 竹綠川(죽록천)이라고도 합니다.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息影亭(식영정)을 왕래하며 '사미인곡''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詩歌(시가)歌辭(가사)를 지었습니다.

송강의 국문가사로는 '성산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등이 있으며 내용은 주로 자연 경관을 노래하거나 임금에 대한 충절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자는 1779년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그때 이름을 松江亭(송강정)이라 고쳐 불렀다합니다.


조선시대 최대의 정치 참사로 일컬어지는 기축옥사..

1,000여명의 조선 선비들이 죽임을 당한 그 회오리바람의 중심에 바로 정치인 송강 정철이 있었습니다. 천하제일의 시인이며 문객인 송강이 왜 이런 비극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일까?... 잔인한 죽음들과 관련된 정철의 행적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56세 때 왕세자 책립문제인 건저문제(建儲問題)가 일어나 동인파의 거두인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와 함께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하기로 했다가 이산해의 계략에 빠져 혼자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했다가 신성군(信城君)을 책봉하려던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졌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는 논척(論斥)을 받고 파직을 당합니다.

함경도 명천(明川)에 유배됐다가 다시 진주(晋州)로 옮기라는 명이 내려진 지 사흘 만에 또다시 강계(江界)로 이배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습니다.1592년(선조 25) 57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귀양에서 풀려나 평양에서 왕을 맞이하여 의주까지 호종, 왜군이 아직 평양 이남을 점령하고 있을 때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체찰사를 지내고 다음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松亭村)에 다가 술병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나이 향년 58세로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송강 묘소(충북도 기념물 106호)는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지장산에 자리하고 있고 인근에는 정송강사와 송강 신도비(충북도 유형문화재 187호) 등 송강 관련 문화유산이 남아 있습니다.송강 묘소는 애초 경기도 고양에 있었으나 1665년(효종 6) 서인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이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아 이장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국어책에 실렸던 재치와 위트 넘치는 송강의 시를 한번 적어봅니다.


재너머 성권농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성권농’의 ‘성’은 성씨이고 ‘권농’은 ‘농사를 장려하는 직책’을 말하며 우계 성혼(1535-1598)을 지칭합니다. ‘박차’는 ‘발길로 냅다 차’, ‘지즐 타고'는 ‘눌러 타다’라는 뜻입니다. ‘정좌수’는 ‘지방 향청의 우두머리’, 정철을 말합니다.

산 넘어 성권농 집에 술 익었다는 말을 어제 듣고 누운 소를 발로 걷어차고는 안장도 얹지 않고 깔개만 깔고 눌러 타고 가서 성권농 집 앞에서 ‘정좌수 왔다고 일러라’하고 아이를 불렀다는 내용입니다.술도 다급했고 친구(우계 성혼)도 무척 보고 싶었었나 봅니다.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치고 상황 전개도 무척이나 빠릅니다. 솔직한 품성, 소탈한 인간미, 자유 분방한 성격이 문장에도 막힘이 없습니다.호방한 기질에다 술까지 좋아했으니 송강은 스스로를 광생(狂生)으로 자처했습니다. 스스로 자타가 공인하는 술꾼이라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습니다.

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