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충효동)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호(1972년 1월 29일 지정)
국가 명승 제107호(2013년 11월 6일 지정)
*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가 은퇴후 교육에 힘쓰던 곳, 환벽당 *
무등산자락의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호 상류 창계천(증암천, 일명 자미탄(紫薇灘 백일홍꽃이 피어 있는 여울))가의 충효동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입니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당시에 주변의 토지가 대부분 김윤제의 소유여서 주변을 벽간뜰이라 불렀으며 그중간 어딘가에 벽간당(碧澗堂)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도 하고 지금의 환벽당이 벽간당이라는 설이 분분합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2칸,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2칸을 방으로 하여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깐 변형된 형식입나다.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후대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이 쓴 제액(題額)이 석천 임억령(石川林億齡)과 조자이(趙子以)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습니다. 현재는 정철의 4대손 정수환(鄭守環)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지금은 정철의 셋째 아들 정근명의 후손 종중(연일정씨)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에 대하여 *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528년 진사가 되었으며,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 겸 춘추관(承文校理兼春秋官)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弘文官校理),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습니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썼는데, 송강 정철(松江鄭徹 1536~1593)과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등이 대표적인 제자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金德齡)과 김덕보(金德普)형제는 그의 종손자(從孫子)로 역시 그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가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김윤제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다가 조대(釣臺)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보니 미역을 감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외손녀를 이 소년에게 시집보냈는데, 이 소년이 뒤에 정치가로서 또한 대문호로서 이름을 날린 송강 정철입니다.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곳에는 식영정(息影亭)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醉歌亭)이 있습니다. 인근에는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이 자리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苑林文化)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환벽당 주인 김윤제와 식영정 주인 김성원이 창계천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서로 왕래하였다고 합니다. 정철이 14세에 김윤제를 우연히 만나고 27세에 관직에 나갈 때까지 10여 년 동안 유숙하였던 곳이 바로 환벽당입니다. 면앙정 송순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건립하고 3년이 지난 뒤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동(창계천,증암천)안에 세 명승 즉, 一洞之三勝이라 말하였다고 합니다.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입니다.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습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창계천(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x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환벽당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던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 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습니다.
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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