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 마지막 무과 급제자 위계충 사진 발굴
오늘 아침 일찍 카톡 사진이 한 장 도착했습니다...
장흥읍 행원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위기섭종친이셨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장흥위씨 조선시대 마지막 무과 급제자 운수공(휘 계충 31세 1853~1931 행원문중 괴봉공파)의 자료를 발굴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흥미로운 제보였습니다...
사진의 원본과 약간은 수정을 한 사진등 2장을 올립니다.
원본 사진의 좌측에 있는 글씨는
'孤哀子 恭良 奉祀(고애자 공량 봉사)
'부모를 모두 여읜 아들 공량이 받들어 제사를 모신다.'라는 뜻입니다.
우측의 글씨는
前別軍職魏啓忠象(전 별군직 위계충 상)
별군직 [別軍職]은 조선 시대, 별군직청에 속하여 임금을 호위하는 일과 죄인을 잡아내는 일을 맡아보던 무관직으로 위계충 생김새(象)쯤으로 해석됩니다.

1999년 발행된 장흥위씨 기묘대동보의 내용과 여러 사실을 종합하여 행원에서는 사과할아버지로 불렸던 위계충(諱 啓忠 31세, 괴봉공파 1853~1931)에 대한 내용을 적어봅니다.
자(字)는 도선(道善), 호(號)는 운수(雲水)이다. 증통정부호군(贈通政副護軍) 행계공(諱 樟)과 淑夫人 인동張氏 사이에서 四子 중, 三子로 태어났다. 1887년 무과 급제(고종(高宗) 24년(1887) 정해(丁亥) 정시2(庭試2) 병과(丙科) 306위)하여 1888년 월선천(越宣薦)하고 1889년 효력부위 수문장(効力副尉 守門將), 1891년 어모장군 순무영별군관(禦侮將軍巡撫營別軍官), 1892년 선략장군 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1895년 절충장군 행친군별군직(折衝將軍行親軍別軍職) 등을 역임했다. 배(配)는 淑夫人 장흥 馬氏, 淑夫人 해남 尹氏이며, 묘소(墓所)는 행원 牛岩山帽岩內艮坐이다.

공량(恭良)은 운수공의 둘째아들로 첫째아들(내량 來良)은 백형 모암재공(휘 계철)에게 출계하여 결국 공량은 운수공(휘 계충)의 장자가 되었습니다.
운수공( 휘 계충)께서는 졸년이 1931년으로 그해에 행원문중 파보를 처음 발행하였는데 도유사를 맡았습니다. 또한 1916년 발행된 장흥위씨 족보 병진보(丙辰譜)의 발행에도 도유사를 맡아 족보 제작에 관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춘헌공(휘 계반 1848~1939)과 운수공과 동명이인 위계충(啓忠, 1861~1936)이 공동도유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동도유사 두분이 장천문중 청계공파 동일 종중출신이라 의문이 있어 확실한 연구와 자료 조사가 필요하지만 자료의 한계와 관련 후손들이 이런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몇몇분들이 오랜시간 추적중이지만 관련 자료의 미비로 아직 확실한 결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운수공(휘 계충)의 관련 자료는 무과 홍패(과거급제교지, 서울거주 후손 소장)와 관련 교지, 묘갈명등이 남아있고 초상화도 부산광역시로 이사간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아직 실물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운수공(雲水公) 위계충(魏啓忠)의 근차용호정운(謹次龍湖亭韻) 근고(謹稿) 현액시(懸額詩)가 현재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 소재 용호정에 걸려있습니다.

궁금했던 선대의 실물 사진이 발굴되었습니다. 향후에도 장흥위씨 선대의 유품들을 발굴하고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
은암 위기섭(행원1구 이장)
탁마재 재치 위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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