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1666년 삼수군수공(諱 天會 24세)은 왜 용천부로 정배(노역형)를 갔을까?...

HL3QBN 2025. 11. 18. 07:43
1666년 삼수군수공(諱 天會 24세)은 왜 용천부로 정배(노역형)를 갔을까?...

행원문중 괴봉공파 삼수군수공(諱 天會 24세, 1629~ 1683?)의 자는 여우(汝遇) 호는 취수헌(醉睡軒)으로 사헌부 지평공(諱 국보(國寶))와 恭人 광산金氏 사이에서 四子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公는 호남어사의 신분으로 장흥을 들른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이 公을 보고 武科에 응시하도록 추천하여 출사하게 됐다고 한다. 젊은 시절 '번쾌불사장비부생'(樊噲不死 張飛復生 번쾌가 죽지 않았고 장비가 다시 살아났다.)라고 불리 울 정도로 호방한 용력과 멋진 한시를 창작할 정도의 지식과 뛰어난 문학성을 겸비하여 公은 오위도총부도사 등 여러 내직을 역임하다가 1664년 함경도 변경 삼수군수(三水郡守)를 제수 받았다.(족보에는 1663년으로 기록)

그런데 당시 삼수에는 해남출신 남인(南人)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73세의 늙은 나이에 조대비(趙大妃)의 상례문제로 서인들과 다투다 1660년부터 위리안치(圍離安置) 되어 있었다.(1664년 당시 고산의 나이는 78세) 고향의 어른이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잘 보살펴줬으며 광양으로 이배시에 남여꾼 제공등의 편의를 봐줬는데, 이 때문에 조정의 미움을 사서 관직에서 물러나고 행원으로 귀향하여 지우들과 수창하며 보내다가 1669년 졸(卒)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지장록 p.132)

하지만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666년 윤선도의 광양으로 유배지를 옮기는 이배시에 관례대로 남여꾼 제공등의 편의를 제공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갑산부사 경일회등 관련 수령 여러명과 함께 처벌을 받고 용천부(현재의 평안도 의주 인근)에 정배되었다.

귀양살이가 풀리고 1671년에 경상우도병마우후를 제수받아 다시 재기하였지만 1672년에 연유(妬忌)를 알 수 없는 살인의 죄목으로 1683년까지 도형 감사정배(사형을 면하고 정배형으로 받음) 이배등 형벌집행과 귀양살이가 되풀이 되었음을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등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공의 1683년까지의 유배 행적은 일부 추적이 되나 그이후의 기록과 졸년은 알 수 없다. 용력과 뛰어난 문무를 겸비했지만 한 많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배(配)는 淑人 죽산安氏, 淑人 연안李氏이며, 묘소는 행원 江亭中麓乙座이고 1822년 석천사(石川祠)에 배향(配享)됐다.

탁마재 재치 위현동...
 
 
행원 석천사에는 '삼수부사 위공'으로 모셔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