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반골의 상 위연(魏延)...

HL3QBN 2025. 7. 5. 07:57
반골의 상 위연(魏延)...

반골기질은 세상의 일이나 권위 따위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말합니다. 즉,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인 권위나 방식, 관습 등에 맹종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비판과 반항을 일삼는 기질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현대적 의미로는 불의와 부정에 굽히지 않는 감수성이 강하며 원칙주의자이자 강골 성격의 소유자를 의미합니다. 모두 '예'라고 할 때에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고정관념이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흔히 반골기질로 평가받습니다.

반골기질의 유래는 중국 후한말 조조의 세력이 강성해져 가는 시기에 적벽대전이후 유비가 '장사'를 포함한 형남 4군(영릉, 계양, 무릉, 장사)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관우와 황충이 일기토로 붙어서 한번씩 서로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서로 한번씩 상대를 살려주었는데 이런 연유로 장사태수 한현이 황충을 의심하여 적과 내통하였다는 혐의로 사형을 집행할 시에 한현의 부하장수였던 위연이 장사태수 한현에게 반기를 들어 한현을 죽이고 황충을 구한 후에 유비군에 항복했을때에 유비는 위연에게 크게 고마워했으나 제갈공명만은 위연이 반골의 상이라고 죽이자고하였으나 겨우 유비에 의해 생명을 구했다. 물론 다른 지역을 점령할 때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제갈공명은 유독 위연에게만 반골의 상이라며 안좋게 평가했다. 제갈공명이 위연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오만한 품성과 함께 뒷통수가 심하게 튀어나온 모습 때문이었다고 라고 평가했다.

제갈공명은 위연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가 장차 모반의 뜻을 품을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실제로 제갈공명이 죽은 후 위연은 모반을 일으켰지만, 이를 미리 예견한 제갈공명이 유언으로 남긴 계략에 빠져 결국 마대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처럼 반골기질은 한자의 의미를 그대로 풀면 반골(反骨)은 뼈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뜻으로, 반역의 골상 즉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의 저자 진수(陳壽)는 위연이 결코 촉나라를 모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려, 반골기질 뜻은 오늘날에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습니다.

현대적 해석은 당시 촉나라에서 정치적 대립관계였던 위연과 제갈공명이 북벌로 불리우는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위연의 자오곡 계책을 제갈공명이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잦은 전쟁에서 여러차례 위연을 험지로 보내는등의 모습으로 제갈공명도 좋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중국 최고의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당나라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년~649년 당나라 제2대 황제 태종 이세민 시기의 태평성대를 의미한다)'시절의 재상 위징도 당태종 이세민에게  충언을 직언했었는데 당 태종은 위징 사후에 위징의 충고를 어기고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가 안시성에서 참패를 맛보고 씁쓸히 후퇴할 적에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원정을 말렸을 텐데..."라며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명신으로 추앙받으며 고려 예종 묘정에 배향된 5세 충렬공(휘 계정)께서도 '不可尙書'(불가상서- 불가 뜻은 아니되옵니다. 상서는 벼슬이름)라는 별명이 있을정도이니 위씨 집안의 반골기질은 알아줄만하다.

최근 이재명정부에서 활약중인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국회의원 위성곤, 대통령국정기획위원 위대훈변호사등이 선조들의 반골기질정신을 거뜬히 받들며 활약하고 있음이 대단히 자랑스럽다...

2년전 작고하신 아버님과 중학 동창이신 동곡 재원 대부님의 장례식장 가는 지하철에서 횡설수설 몇 자 적어봅니다...

탁마재 재치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