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옥봉(玉峯) 백광훈선생의 시첩을 보면서... 3.운암공(21세 휘 덕관)

HL3QBN 2025. 2. 23. 07:40
옥봉(玉峯) 백광훈선생의 시첩을 보면서... 3.운암공(21세 휘 덕관)

贈魏而栗(증위이율)
위 이율에게 드리다.

玉峯 白光勳(옥봉 백광훈)

不省梅花發(불성매화발) : 매화 꽃이 피는걸 깨닫지 못하고
君來病出門(군래병출문) : 그대 오기에 병중에 문을 나섰네.
春山日已晩(춘산일이만) : 봄 산에 햇살은 이미 저무는지라
杯盡却忘言(배진각망언) : 술잔 다하여 말을 잊고 돌아가네.


위덕관(魏德寬)
자(字)는 이율(而栗)이요 호(號)는 운암거사(雲巖居士)니 명종(明宗) 정미(丁未) 1547년12월15일생이요 인조(仁祖) 무진(戊辰) 10월4일 종(終)하니 향년(享年)이 82다. 품성(稟性)이 온수(溫粹)하고 지신강직(持身剛直)하며 훈자시례(訓子詩禮)하여 위세소종(爲世所宗)하니 이행의(以行誼)로 천(薦)하여 제봉직랑군자감판관(除奉直郞軍資監判官)하고 수자(壽資)로 승부호군(陞副護軍)하다. 유유서급임진란후형제상회지문(有遺書及壬辰亂後兄弟相會之文)하며 묘(墓)는 용계역기해좌(龍溪驛基亥坐)다. ○ 배(配)는 숙부인(淑夫人) 영광김씨(靈光金氏)요 부(父)는 진사구명(進士龜命) 조(祖)는 월봉광원(月峰光遠)이며 증조(曾祖)는 헌납괴(獻納塊)니 관찰사필(觀察使㻶)의 현손(玄孫)이요 무오(戊午) 8월18일 졸(卒)하니 묘(墓)는 쌍조(雙兆)며 선조(宣祖) 계사(癸巳) 1593년에 시거우기동(始居于基洞)하고 유갈(有碣)하다.

당곡진사공(20세 휘 곤 1515~1582)은 다섯 아들을 두었다. 이른바 오덕(五德)이다. 이들은 장흥위씨 21세로 덕홍(德弘)·덕의(德毅)·덕관(德寬)·덕화(德和)·덕후였다. 이 오덕(五德) 중 덕홍(德弘)의 자손은 판사공파(判司公派), 덕의(德毅)의 자손은 청계공파(廳溪公派), 덕관(德寬)의 자손은 운암공파(雲岩公派), 덕화(德和)의 자손은 판서공파(判書公派), 덕후(德厚)의 자손은 안항공파(顔巷公派)로 나눠지며 비로소 관산파 장흥 위씨들이 이때부터 크게 번성하게 되었으며 장흥위씨 최대종파를 이루고 있다.

위덕관(魏德寬,1547∼1628 호는 운암)은 1593년 47세 때 부산면 기동리에 입향(入鄕)하여 그곳에서 은거했다. 그는 마을 이름도 기동이라 짓고 훗날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경호정(鏡湖亭) 터인 석대에 자주 올라 시문을 읊었고, 이곳에서 행의(行義)를 실천하며 계산풍류(溪山風流)의 삶을 살았다. 그 후손들이 대대로 정주하며 세거, 운암공파 집성촌을 일구고 현대에는 존경받는 박사마을로 유명하다.

자료협조 : 호산(湖山) 위신복
탁마재 재치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