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옥봉(玉峯) 백광훈선생의 시첩을 보면서... 2.판사공(21세 휘 덕홍)

HL3QBN 2025. 2. 20. 20:17
옥봉(玉峯) 백광훈선생의 시첩을 보면서... 2.판사공(21세 휘 덕홍)

寄題魏士任家[기제위사임가]
위사임의 집에 써서 부치다.

玉峯 白光勳[옥봉 백광훈]

柴門無客長苔錢[시문무객장태전] : 사립 문에는 손님도 없으니 이끼만 자라나고
花滿山時月滿川[화만산시월만천] : 때마침 산에는 꽃이 가득 들엔 달빛 그득하네.
好待吾行最良夜[호대오행최량야] : 사이좋게 기다려 우리가 보던 가장 훌륭한 밤
碧巖深處聽啼鵑[벽암심처청제견] : 푸른 언덕 깊은 곳에 두견이 울음소리 들리네.

苔錢[태전] : 동전 모양으로 생기는 이끼.모듬 이끼. 그러나 여기서는 ‘청태전(靑苔田)’을 의미한다.


옥봉선생의 시에 나오는 魏士任은 장천문중 오덕중 큰형인 판사공(휘 덕홍)의 字입니다.

옛날에는 이름을 귀중하게 여겨 함부로 부르거나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도에 따라 여러개의 이름을 갖는것은 동양의 풍습이었습니다.

명(名) - 태어나서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 비난할 때 주로 씁니다.

자(字) - 남의 이름〔名〕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장가를 가거나 성인식을 치르면 새로 이름〔字〕을 지어 본명 대신에 썼씁니다. 영예롭거나 칭찬할 때 썼습니다.

호(號) - 명(名)이나 자(字) 말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짓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서 누구나 부를 수 있도록 하는 이름입니다.

시(諡) - 죽은 다음에 부르는 이름입니다.

특히 1759년에 발행된 장흥위씨 최초의 족보 '기묘초보'에는 판사공(휘 덕홍)의 자(字)는 '사임(士任)'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42년에 발행된 장흥위씨 두번째 족보 임인보(壬寅譜)부터 1883년 계미보(癸未譜), 1916년 병진보(丙辰譜), 1957년 정유보(丁酉譜), 1972년 임자보(壬子譜), 1999년 기묘보(己卯譜)까지 모두 자(字)는 사림(士林)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99년 장흥위씨 기묘대동보 면주 내용입니다...

위덕홍(魏德弘)
자(字)는 사림(士林)이요 중종(中宗) 정유(丁酉) 1537년생이니 문예숙성(文藝夙成)하여 연17(年十七)에 향해삼장(鄕解三場)하고 부회견굴(赴會見屈)하여 잉즉폐거(仍卽廢擧)하다. 관(官)은 군자정(軍資正)이니 묘(墓)는 관산당동후탄현등계좌(冠山堂洞后炭峴嶝癸坐)다. ○ 배(配)는 남평문씨(南平文氏)요 부(父)는 남해현감(南海縣監) 응주(應周)며 유1자2녀(有一子二女)하고 묘(墓)는 합조(合兆)다. ○ 배(配)는 청풍김씨(淸風金氏)요 부(父)는 충의위우박(忠義衛佑璞) 조(祖)는 준지(遵智)며 묘(墓)는 관산북화운동후병좌(冠山北花雲洞后丙坐)다.

판사공(휘 덕홍)의 字에 관한 사항은 이미 2009년 발행된 '방촌학1'(저자 위의환) 36페이지에서 족보의 오류를 지적하고 지장록 148페이지 행장략에는 字가 '사임(士任)'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리고 위사임(魏士任) 위덕홍(魏德弘)임을 알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기록의 우연한 계속 연이은 오기인지를 확인에 확인이 필요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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