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야기

<한시> ■ 毋投與狗骨 :무투여구골 (개에게 뼈다귀를 주지 마라!)...김시습

HL3QBN 2016. 1. 9. 11:01


■개에게 뼈다귀를 주지 마라!

 

毋投與狗骨(무투여구골)

개에게 뼈다귀를 주지 마라.


集類亂喍啀(집류난재애)

떼 지어 어지러이 다툴 것이니,


不獨其群戾(불독고군려)

제 무리와 어긋날 뿐만 아니라.


終應與主乖(종응여주괴)

끝내는 주인과도 어그러지리라


尊周專戰伐(존주전전벌)

주나라를 높인다고 정벌 일삼고,


安漢弑嬰孩(안한시영해)

한 왕실 안정시킨다며 아이 죽이다니.


莫若嚴名分(막약엄명분)

무엇보다 명분을 엄정히 하여,


勤王作止偕(근왕작지해)

다함께 근왕에 나서야 하리.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매월당집(梅月堂集)』 권1

「술고(述古)」10수(首) 중 아홉 번째 시

 

■역사적 사실을 시 창작의 계기로 삼는 시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소재로 하여 시인의 감상을 붙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인이 시 속으로 끌어온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라기보다는 바로 자기 자신이 처한 당대 현실의 문제 상황이며, 또한 거기에는 영원히 해결되기 어려운 인간 실존의 심각한 모순이 담겨 있기도 하다. 따라서 그 시에서 던져주는 깊은 울림에 공감하고 보편적 정서에 동참할 때 그것은 지금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현실이 된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5세 때 세종(世宗) 앞에 불려가 시를 지을 정도로 뛰어난 신동이었다. 그러나 1455년 21세의 나이로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首陽大君:훗날의 세조(世祖))이 단종(端宗)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책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종적을 감추었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주 무왕(周武王)을 피해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절의에 비견되었고, 후대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칭송되었다.

 

김시습은 역사의 전개가 자칫 선(善)이나 의리라는 이념이나 정신의 발현과는 상관없는 뼈다귀 같은 이익을 놓고 제 무리와 다투고 끝내 제 주인도 저버리는 짓이 될 수도 있음을 일찌감치 간파한 모양이다. 나라를 높이느니, 왕실을 안정시키느니 하는 그들의 명분도 결국은 이익을 도모하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렇게 보면 춘추시대 이래 끊임없는 정벌전쟁을 비롯하여, 자신이 옹립한 어린 황제(평제(平帝))를 독살하고 제위를 찬탈한 왕망(王莽)의 행위도 그리 이상할 것 없겠다. 이는 곧 그의 당대에 있었던 계유정난을 빗대어 말한 것이리라. 결국 요청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시시비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분명한 가치 기준의 정립, 바로 참된 의미의 명분을 세우는 것이요, 그것을 지키는 절개이다.

 

인간의 도덕성과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풀기 어려운 인간의 실존적 현실일 것이다. 이에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열전(史記列傳)』의 첫머리에 「백이열전」을 두고 천도(天道)의 존재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토로하였던가. 난신적자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절의에 목숨을 던진 충신열사가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못하는 세상, 단지 돈과 권력이 정의가 되는 세상이라면 뼈다귀를 놓고 몰려다니며 다투는 무리와 무엇이 다르랴. 이런 세상일수록 더욱 역사의 도덕성을 구현하는 정직한 판단, 역사의 실존이 요청된다.

 

글쓴이 : 정동화

출처-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