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야기

뼈대있는 철학...개똥철학(견유학파)이야기...

HL3QBN 2012. 12. 18. 11:38

 

 

개똥철학(견유학파)이야기...

犬儒學派

 

견유학파(犬儒學派)·시니시즘이라고도 한다.


이 파의 창시자는 일반적으로 안티스테네스로 여겨지고 있으나, 견유학파를 처음으로 실천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에게 미친사람”이라는 디오게네스(주전 410-324)였다. 이 파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극기적인 철학의 일면을 계승하여 덕()만 있으면 족하다 하여 정신적·육체적인 단련을 중요시하였으며, 쾌락을 멀리하고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추구하였다. 일반적으로 자족자제(自足自制),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의지의 우월성을 존중하였으며, 권력이나 세속적인 일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를 원하였고, 세계시민으로 자칭하여 헬레니즘 세계로 설교여행을 다니기도 하였다
.
견유학파에게의 행복은 헬라어로 아우타르케이아라고 하는 자기 만족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들은 소위 디아트리베(수사학 용어로서 장광설 또는 독설적인 논쟁을 가리킨다)라는 것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기들의 생각을 나타냈다
.
키니코스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안티스테네스가 교편을 잡았던 학교가 아테네 교외의 키노사르게스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나, 그보다는 시노페의 디오게네스(BC 412?BC 323)로 대표되는 ‘개와 같은 생활(kynicos bios)’에서 유래한 듯싶다. 가진 것이라곤 남루한 옷과 지팡이, 목에 거는 수도사의 주머니밖에 없으며, 나무통을 집으로 삼아 살아가는 거지 철학자는 스스로 ‘개와 같은 디오게네스’라고 이름하였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신의 특징이며,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이 그들의 입버릇이었다. 디오게네스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
그들은 사회적인 습관은 물론, 이론적 학문이나 예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옛 사람은 그들의 이러한 점을 평하여, 키니코스주의라는 것은 ‘덕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하였다.

 

 

견유학파(犬儒學派) 철학자 / 디오게네스(Diogenes)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가운데 디오게네스(Diogenes, ? B.C.412~? B.C.323)가 있다. 그는 남루한 차림으로 손에는 늘 등잔을 들고 다니던 괴짜였다. 디오게네스에게 있어 이 등잔은 정직한 사람을 찾는 도구였다.

 

가난한 디오게네스는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남긴 철학자였다. 그 가운데서도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된 일화는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알렉산더가 정복전쟁을 통해서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넓은 땅을 일국의 휘하에 두고 대왕으로서 군림하던 시절...
그곳에는 알렉산더와 비견되는 명성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가 있으니 그는 '디오게네스'였다. 헌데 그는 알렉산더와는 정 반대되는 처지의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지'였던 것이다
.

그는 인간의 정신이 물질에 대한 욕심에 의해서 흐트러짐의 폐해를 그 시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극빈'의 생활을 강조하면서 술통으로 만든 집에서 그의 유일한 재산인 물을 떠먹을 때 쓰는 '표주박'만을 가지고 살았다
.
그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생활한 걸로 사서에 묘사되곤 하는데, 그가 유일한 재산인 표주박을 옆구리에 차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라. 정말 유쾌하지 않은가
?

헌데 그가 그의 유일한 재산인 '표주박'을 버리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개가 한 마리 웅덩이에서 물을 먹고 있었단다
.
그래서 자신도 그렇게 해봤더니
...
'
어라? 표주박 없이도 물을 먹을 수 있네
?'
결국 그는 표주박을 버리고, 그날부터 개와 같은 방법으로 물을 먹었다고 한다
.
그가 시조가 되는 '(
)유학파'의 이름은 이렇게 유래가 되어진다.

그는 또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자 노력을 했다
.
그 분수령이 된 사건은 시장판에서의 자위행위였다
.
아마 시장판에서 자위행위를 한 세계 최초이자 최후의 사람으로 그는 기록되고 있을 터인데, 이러한 행위가 부도덕한지 어떤지를 떠나서, 그는 그야말로 자신의 사고와 한계를 자신의 삶에서 실험을 했던 진정한 인간인 것이다
.
자신의 의지를 시험해 보려고 손에 불침을 한번이라도 놔본 사람들에게는 그의 행위가 '신화'로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러한 맥락이다
.

디오게네스는 또한 '명예'에 무관심했고, '권위'에 기죽지 않았다
.
아마 알렉산더 대왕이 친히 그의 '술 통집'에 방문했을 때 빚었던 사건은 가장 유명한 일화리라
.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알렉산더는 사신을 보내서 그를 궁궐에 초대를 했다. 하지만 디오게네스... 그의 입장에서는 궁궐에 가야할 이유가 없었다. 거부했다
.
알렉산더 이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사신을 보냈다. 디오게네스 역시 거부했다
.
도대체 어찌된 인물이길래 '대왕'이 부르는데도 불구하고 그 초대를 사절하는지... 한편으로는 괘씸하고,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극에 달한 알렉산더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친히 디오게네스가 사는 곳에 행차를 하게 된다
.
일 개 평민을 만나기 위한 '대왕의 행차'
...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가 살고 있는 술통집에 도착했을 때 때마침 디오게네스는 그의 술통집에서 다리 쭉~ 뻗고 세상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디오게네스라는 자유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만이 향유할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이자, 권리였다
.
알렉산더는 말에서 내려서 낮잠을 자고 있는 그를 좀 더 잘 보기 위해서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고개를 숙였다
.
거기에는 온 몸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 수염이 덥수룩한 어느 노인이, 코를 골고 자고 있지 않는가
?
명성에 맞지 않게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는 디오게네스의 모습에 안스러움을 느낀 알렉산더는 때마침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부시시 뜨고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말했다
.

"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뭐 필요한 것이 없는가
?"

눈을 반쯤 뜬 디오게네스... 그가 본시 바보는 아니었을 터인 즉... 그는 세계의 2/3를 정복한 대왕...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인 알렉산더가 하는 그 '제안'을 곰곰히 생각해 본 끝에 스스로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서 거침없이 말했다
.

"
.. 그러하시다면 거기 좀 자리 좀 비켜 주십시오. 햇빛이 가려집니다
."

그리고 그는 다시 잠에 들었단다
.

디오게네스와 그렇게 짧은 만남을 이루고 돌아가던 알렉산더
...
그는 말 잔등 위에서 다음과 같이 한마디 했다고 한다
.

"
... 내가 알렉산더가 아녔다면... 디오게네스였고 싶다
."

물론 이러한 전해지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확고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임했던 그는 인류 정신사의 한 궤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리고 그러한 파장은 2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

하지만 그러한 '숭고한 정신'은 물질주의적인 가치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는 세계에서 보통의 평범한 사람의 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꺼리가 되지 못하는 듯 하다
.
.. 안타깝지 않은가
?
주체적 정신을 세우는 노력보다는 외적인 치장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명증한 생각과 고독을 통한 자기 존재와의 맞섬보다는 떠들썩한 모임에서 자신의 자아를 마취시키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인간과 자연사랑의 능력보다, 멋진 핸드폰을 손에 거머쥘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는 온통 시간을 쏟고 있지 않는가
?
우리가 매일 거울을 쳐다보면서 보는 ''이 다른 사람의 눈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
도무지 우리 시대...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사는 주체적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

디오게네스가 성취한 '자유' '실존'에는 우리가 접근하기 힘들지라도
...
우리는 디오게네스가 자신의 최후의 재산인 표주박을 버렸던 용기를 생각하면서... 21세기! 자본이 인간의 의식을 잠식하는 사회의 중심에서...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
'
표주박을 버리는 용기'를 실현하며 우리는 각자의 '주체'를 찾아야 할 것이다
.
그것은 내 욕심을 버림으로 인해서 진정한 ''
를 찾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