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모스탄, 출국정지 집행정지 기각한 위지현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부장판사는 누구인가?

HL3QBN 2026. 6. 24. 18:34
모스탄, 출국정지 집행정지 기각한 위지현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부장판사는 누구인가?


한국에 입국했다가 출국정지 처분을 받은 모스 탄 미국 리버티대학교 교수가 집행정지를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위지현 부장판사는 6월 4일 모스 탄 교수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출국정지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2026아12129).

위 부장판사는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신청인에게 발생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는 인정된다”면서도 “당사자가 제출한 소명자료 및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해 소명되는 사정 등에 비춰 볼 때, 이 사건 처분의 효력이 정지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모스 탄 교수는 2025년 6월 미국 워싱턴D.C. 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이재명 대통령이 청소년 시절 강력범죄에 연루돼 소년원에 수감됐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경찰은 모스 탄 교수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수사해 왔다.

법무부는 서울경찰청의 출국정지 요청을 받고 6월 1일부터 30일까지 탄 교수에게 출국정지 처분을 내렸다. 탄 교수는 5월 28일 한국에 입국한 상태다.

그렇다면 과연 위지현부장판사는 누구인가?...

결론적으로 위지현판사는 장흥위씨도문회에서 발행한 기묘대동족보에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몇가지 단서를 추적하면 누구인지 추적이 가능할 것 같다.

우선 1977년생인 위판사는 여동생이 있다. 위서현 KBS 아나운서(79년생)이며 아버지는 위기영씨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 어떤 종친 모임에서 위기영씨를 뵌 적이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진행자가 위서현아나운서의 아버지로 소개했었다...

위기영씨는 1999년 장흥위씨도문회에서 발행한 기묘대동족보에 등재되어 있는데... 장천문중(관산파) 곡성현감공파 36세로 기록되어 있으며 특별한 행장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위지현판사는 장흥위씨 장천문중(관산파) 곡성현감공파 37세가 된다.

곡성현감공(21세 휘 대성)은 장흥위씨 장천문중(관산파)의 종손으로 장흥 관산, 용산에서 살았었던것으로 추정된다. 22세 후징(後徵)때에는 장흥, 보성등지에서 주거했을 가능성이 높다. 후징의 사마방목에 거주지가 보성으로 되어 있다. 23세 인지(麟趾)때에 京城 또는 경기도 양주로 이거하였고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철계교 동쪽 산이다. 24세 세두(世斗)때에는 행장이 미상으로 묘소는 考塋下이다. 차자는 연(連)으로 묘소는 같다. 25세 명만(命萬)은 묘소는 상동이며 명백(命百)은 실묘, 용(龍)은 묘소가 각심사로 되어있는것으로봐서 서울과 경기도 양주 일때에 주거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26세 때부터 곡성⋅담양, 서울 종로⋅은평, 강원도 영월로 뿔뿔이 흩어져 정착하게 된다.

이들중 일부는 스스로 '경파', '서울파'라고 지칭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호칭은 맞지않고 '곡성현감공파'라고 통일되게 불려야 하며 전국에 흩어진 곡성현감공파가 서로 연락하여 동일체적 모임이나 제사등의 행사가 있어야 합니다.

곡성현감공(휘 대성)은 제 38대(1565년 1월~7월)곡성현감을 역임하셨는데 우리 족보에는 병자호란(1636년~1637년)때에 활약하고 이후 동궁을 호위하여 청나라의 심양까지 다녀온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내용은 행원문중 괴봉공파 문화현령공(23세 휘 산보)의 행장 내용과 동일하다. 이것은 곡성현감공의 행적이 아닙니다. 후손들은 시급히 곡성현감공의 행적을 조사하고 행장을 정리하여 새로운 행장을 작성함이 타당하고 봅니다.

종친중에서 가끔 필자에게 자신의 종파와 항렬등을 문의하는 종친들 있는데 어렵게 추적하다보니 그중에서 몇몇은 곡성현감공파였습니다...

우연히 뉴스를 듣다가 위지현판사가 누구인가라는 글을 쓰다가 곡성현감공파와 경파로 스스로 호칭하는 종친들에 대해서 두서없이 몇자 적어봤습니다...

혹여 내용중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서슴치 마시고 지적해 주시길 바랍니다...

장흥위씨도문회 부회장
탁마재 재치 위현동...

아래사진...
1956년 곡성군노인회에서 편집 발행한 '곡성군지' 우측 상단 2번째에 곡성현감공 “魏大成”의 인명과 품계 봉렬(奉列, 정4품 하)이 확인됩니다.

아래사진...
사마방목(司馬榜目)에 1585년(宣祖18)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에서 곡성현감공의 아드님이신 22세 위후징(魏後徵)이 진사(進士) 3등(三等) 49위로 입격이 확인된다. 字는 훈경(勳卿), 생년은 1553년(명종8), 본관은 장흥(長興), 거주는 보성(寶城)이며, 부(父)는 전 곡성현감(前 谷城縣監) 대성(大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