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수법(行守法) 이해하기...
교지,비석등의 금석문을 읽을 때에 한문도 읽기 어렵고 띄어쓰기도 안되어 있고 도대체 어떻게 읽는지 대단히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하지만 간단한 읽기 방법을 알면 참 쉽습니다...그중에 대표적인것이 행수법(行守法)인데 이것을 알면 간단히 몇가지는 해결되지만 모르면 헷갈리고 도대체 기록물이 맞게 기록되어 있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있을 것 입니다...
관직(官職) 즉 벼슬은 숫자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관리들의 등용문은 과거제 음서제 추천제등 다양했고 관리가 되려는 사람들은 많았으며 각각의 역량에도 차이가 있었는데 이러한 관직의 불일치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행수법(行守法)입니다.
모든 관직은 <階> 품계 즉 직급, <司> 소속한 관청, <職> 직이 주어집니다. 가선대부 이조 참판(嘉善大夫吏曹參判)은 가선대부는 종2품 품계로 소속관청은 이조이며 직책은 참판(종2품의 직책)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요즘의 공무원 계급처럼 1품부터 9품까지로 계급을 분류하였으나 다른 점은 품계마다 정(正)과 종(從)으로 구분하여 18품계를 두었습니다. 정확히는 18품과 30계를 두웠는데 정1품부터 종6품까지는 정,종 각품마다 상계와 하계를 두어 24계가 됩니다. 7품부터 9품까지는 정,종만 있어서 총 30계가 됩니다...그러므로 정확히는 18품 30계로 구분됩니다...
관직의 수가 적어 행수법을 많이 적용하였습니다. 보임된 관직이 품계보다 낮은 경우에는 "행(行)”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보임된 관직이 품계보다 높은 경우에는 “수(守)” 라 하여 품계와 관직명 사이에 행(行)과 수(守)를 넣어 사용했습니다. 즉 부장이 대리급의 직무를 수행하면 '행', 대리가 부장급의 일을 하면 '수'라고 썼습니다...
이른바 행수법(行守法)은 품계(品階)가 높으면서 관직이 낮은 경우에는 '行'이라 하고[階高職卑則行], 반대로 품계는 낮은데 관직이 높을 경우에는 '守'라 하여[階卑職高則守], 소속 관청의 명칭 앞에 '行' 또는 '守'자를 붙입니다.
이를테면, 종1품인 숭록대부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정2품이 할 수 있는 이조판서가 되면 '崇祿大夫行吏曹判書'라 하고, 반대로 종2품직인 가선대부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정2품직인 대제학이 되면 '가선대부수홍문관대제학'이라 사용하여 그사람의 품계를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옛 문서와 묘갈문(묘비)을 위시한 금석문(金石文)에서 관직앞에 행수(行守)를 구분한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장흥위문에서 행수법으로 씌여진 교지를 소개합니다.
장천문중 호조판서공(21세 휘 덕화)의 '수' 교지...
교지,비석등의 금석문을 읽을 때에 한문도 읽기 어렵고 띄어쓰기도 안되어 있고 도대체 어떻게 읽는지 대단히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하지만 간단한 읽기 방법을 알면 참 쉽습니다...그중에 대표적인것이 행수법(行守法)인데 이것을 알면 간단히 몇가지는 해결되지만 모르면 헷갈리고 도대체 기록물이 맞게 기록되어 있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있을 것 입니다...
관직(官職) 즉 벼슬은 숫자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관리들의 등용문은 과거제 음서제 추천제등 다양했고 관리가 되려는 사람들은 많았으며 각각의 역량에도 차이가 있었는데 이러한 관직의 불일치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행수법(行守法)입니다.
모든 관직은 <階> 품계 즉 직급, <司> 소속한 관청, <職> 직이 주어집니다. 가선대부 이조 참판(嘉善大夫吏曹參判)은 가선대부는 종2품 품계로 소속관청은 이조이며 직책은 참판(종2품의 직책)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요즘의 공무원 계급처럼 1품부터 9품까지로 계급을 분류하였으나 다른 점은 품계마다 정(正)과 종(從)으로 구분하여 18품계를 두었습니다. 정확히는 18품과 30계를 두웠는데 정1품부터 종6품까지는 정,종 각품마다 상계와 하계를 두어 24계가 됩니다. 7품부터 9품까지는 정,종만 있어서 총 30계가 됩니다...그러므로 정확히는 18품 30계로 구분됩니다...
관직의 수가 적어 행수법을 많이 적용하였습니다. 보임된 관직이 품계보다 낮은 경우에는 "행(行)”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보임된 관직이 품계보다 높은 경우에는 “수(守)” 라 하여 품계와 관직명 사이에 행(行)과 수(守)를 넣어 사용했습니다. 즉 부장이 대리급의 직무를 수행하면 '행', 대리가 부장급의 일을 하면 '수'라고 썼습니다...
이른바 행수법(行守法)은 품계(品階)가 높으면서 관직이 낮은 경우에는 '行'이라 하고[階高職卑則行], 반대로 품계는 낮은데 관직이 높을 경우에는 '守'라 하여[階卑職高則守], 소속 관청의 명칭 앞에 '行' 또는 '守'자를 붙입니다.
이를테면, 종1품인 숭록대부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정2품이 할 수 있는 이조판서가 되면 '崇祿大夫行吏曹判書'라 하고, 반대로 종2품직인 가선대부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정2품직인 대제학이 되면 '가선대부수홍문관대제학'이라 사용하여 그사람의 품계를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옛 문서와 묘갈문(묘비)을 위시한 금석문(金石文)에서 관직앞에 행수(行守)를 구분한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장흥위문에서 행수법으로 씌여진 교지를 소개합니다.
장천문중 호조판서공(21세 휘 덕화)의 '수' 교지...

<1594 선조 27년, 봉정대부수군자감정겸언양현감 정4품 上>
敎旨
魏德和爲奉
正大夫守軍資
監正兼彦陽縣
監者
萬曆二十二年二月初十日[印]
軍功陞叙
● 내용 및 특징
1594년(선조 27) 2월 10일에 선조(宣祖)가 魏德和에게 奉正大夫守軍資監正兼彦陽縣監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봉정대부(奉正大夫)는 조선시대 정4품 東班 文官에게 주던 上階 품계이다. 군자감정(軍資監正)은 조선시대에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맡은 군자감에 소속된 정3품 관원이며, 현감은 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 단위였던 현을 다스리던 종6품 관직이다. 언양(彦陽)은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이다. 관직이 품계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수(守)자를 붙였다. 연호 옆의 부기(附記)를 보면 위덕화는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당시의 軍功으로 승서(陞叙)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행원문중 괴봉공파 삼수군수공(24세 휘 천회)의 '행' 교지
魏德和爲奉
正大夫守軍資
監正兼彦陽縣
監者
萬曆二十二年二月初十日[印]
軍功陞叙
● 내용 및 특징
1594년(선조 27) 2월 10일에 선조(宣祖)가 魏德和에게 奉正大夫守軍資監正兼彦陽縣監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봉정대부(奉正大夫)는 조선시대 정4품 東班 文官에게 주던 上階 품계이다. 군자감정(軍資監正)은 조선시대에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맡은 군자감에 소속된 정3품 관원이며, 현감은 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 단위였던 현을 다스리던 종6품 관직이다. 언양(彦陽)은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이다. 관직이 품계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수(守)자를 붙였다. 연호 옆의 부기(附記)를 보면 위덕화는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당시의 軍功으로 승서(陞叙)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행원문중 괴봉공파 삼수군수공(24세 휘 천회)의 '행' 교지

<1665 현종 7년, 어모장군행충무위부사용자 정3품 下>
敎旨
魏天會爲禦
侮將軍行忠
武衛副司勇
者
ㅇ熙四年正月 日[印]
●내용 및 특징
1665년(현종 7) 1월 顯宗이 魏天會에게 禦侮將軍行忠武衛副司勇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정3품 西班 무관에게 주던 下階 품계이다. 충무위부사용(忠武衛副司勇)은 조선의 군사조직 중 오위(五衛)의 하나로 소속 종9품 西班 무관직이다.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자료 참조...
네이버 블러그 '백강 위성록의 이야기'
https://m.blog.naver.com/wsr061?noTrackingCode=true&proxyReferer=&tab=1
敎旨
魏天會爲禦
侮將軍行忠
武衛副司勇
者
ㅇ熙四年正月 日[印]
●내용 및 특징
1665년(현종 7) 1월 顯宗이 魏天會에게 禦侮將軍行忠武衛副司勇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정3품 西班 무관에게 주던 下階 품계이다. 충무위부사용(忠武衛副司勇)은 조선의 군사조직 중 오위(五衛)의 하나로 소속 종9품 西班 무관직이다.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자료 참조...
네이버 블러그 '백강 위성록의 이야기'
https://m.blog.naver.com/wsr061?noTrackingCode=true&proxyReferer=&tab=1
교지,비석등의 기록물중에 대부분이 '행'이며 매우 드물게 '수'를 볼 수 있습니다.
비석등의 금석문과 교지등의 기록물을 읽을 때에 행수법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장흥위씨도문회 부회장
탁마재 재치 위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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