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경회(景晦) 김영근(金永根)선생의 《遠遊日錄(원유일록)》 중 장흥 위씨 관련 부분을 7회에 걸쳐 연재합니다.-3
《遠遊日錄(원유일록)》은 경회 김영근선생이 홍의재 위봉,후포(後圃) 조동겸(趙東謙), 자(字)가 인부(仁夫)인 홍병원(洪秉元), 경회당의 아들 효주(孝柱) 등 다섯분이
1906년 5월 19일 장흥 강진을 떠나 간도로 망명을 가는 여정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그중에서 자공(自恭)할아버지가 터를 잡고 사셨던 함경도 신흥군 원평면 우상동의 장흥 위씨 집성촌을 방문한 생생한 117년전의 기록을 경회 김영근선생 후손 김환균씨의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7월)십육일 청(晴)하다. 성일이 쌀밥으로 아침을 냈다 이렇게 천지가 번복되는 날에 실로 북토(北土)에서는 드문 일이다. 노자를 마련하기 위해 후포와 인부, 효주를 권하여 부근의 마을로 나뉘어 들어가 붓과 빗을 팔게 하고 십구일 만나자고 약속을 했으며, 나는 홍의로 더불어 떨어져 있으며 성일에게 오인의 옷을 빨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때 위묵원사보(魏黙源士甫)가 저녁밥을 마련해 놓고 그 아들 정봉(禎奉)을 보내 맞으므로 가서 먹고 다시 성일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밤에 패독산(敗毒散) 일 첩을 달여 먹었는데 달빛이 뜰에 가득하고 물소리가 베개에 울리니 집 생각을 금할 수 없어 오언 율시 일 수와 오언 절구 세 수를 지었다 그 사친시(思親詩)는 〈만 리에 자친을 작별하니 모년의 나이 팔순에 가까우시다. 달빛 아래 마음은 항시 간절하지만 하늘가에서 꿈이 자주 꾸어지지 않는다 비록 이름이 알려진 선비를 만나보지만 뜻이 있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내 생명이 목석이 아닌데 먼 객지에서 이 어느 때인가(萬里別慈親 暮年近八旬 月下心常切 天涯夢不頻 縱見知名士 難逢有意人 吾生非木石 遠客此何辰)〉 했고, 그 아내를 생각한 시는 〈오랜 이별은 슬프지 않지만 집이 가난해서 이마가 자꾸만 찌푸려진다. 아마도 달 밝은 밤이면 돌아갈 때를 손꼽아 기다리리라(久別未爲悲 家貧多蹙眉 想應明月夜 屈指計歸期)〉 했고, 중자 성주(仲子聖柱)를 생각한 시는 〈눈물 자국이 두 옷깃을 적시며 사정(社亭)의 그늘에서 나를 전송했었다. 혹시 글 공부 부지런히 하고 할머니의 마음을 상하지나 않느냐(淚痕濕兩襟 送我社亭陰 倘得勤書冊 不傷祖母心)〉 했고, 그 셋째 자식 평주(平柱)를 생각하는 시는 〈한번 이별한 뒤로 달이 세 번 둥글었는데 귓전에 아비를 부른 소리가 쟁쟁하다. 평안하기만을 바랄 뿐이고 자잘한 일은 관심에 없다(一別月三盈 耳邊喚父聲 平安惟所冀 瑣瑣不關情)〉 했다.
* 위봉(魏棒 철종14년 1863 ~1943) 향년 81
長興魏氏 30世 안항공파, 字는 대언(大彦), 號는 弘毅齋, 진사 영이재 위문덕의 5대손.존재공의 아우인 상암공(諱 伯昊)의 현손으로 방촌 출신이다.
父는 魏世祚, 母는 金海金氏 金俊譯의 女. 冠山 古下面 桂春里生. 강진 오남 김한섭 선생의 제자이다. 면암 최익현 선생에게 보낸 간찰 6통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술합방 후 翌年 3월 가족을 이끌고 間島 和龍縣 西城村 南陽情舍에 정착했다.墓는 미상. 配는 해남윤씨다.대동보 3권 124페이지. 일반적으로 '봉식'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족보에는 '봉'(1863∼?)으로 되어 있다.
*경회 김영근(1865~1934)선생은 구한말 강진 태생의 유학자이다. 조선 후기의 격동기와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조선의 선비이다. 노사 기정진과 화서 이항로의 학맥을 계승하였고, 평생을 '위정척사'와 '항일호국'의 정신 속에서 살았다. 김영근은 나라가 위태로움에 처하자 1906년과 1913년 두 번에 걸쳐 간도 망명을 결행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후에는 후학들을 길러내는 한편, 인도공의소 등 유림 조직의 일에 적극 참여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김영근 문집 등 서적 29권 및 유묵13점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다. 2013년 9월 25일 강진군의 향토문화유산 제55호로 지정되었다. 문화방송(MBC) 'PD수첩' PD와 제20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 제8대 제9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으로 현재는 대전MBC 대표이사 사장으로 있는 김환균이 그의 증손이다.
장흥위씨 족보 자문 : 호산 위신복 장흥위씨족보편찬연구위원
탁마재 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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