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 선조님들에 대한 신원과 행적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얼마전 평택 화성 김포 출장을 마치고 나주화순으로 복귀하는 길에 관북종친회 총무이신 위정찬종친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김환균이라는 PD가 장흥위씨들의 신원을 의뢰해 왔다고해서 저에게 그분하고 연락을 하기를 원하셔서 며칠후에 연락을 했습니다...
연락이 된 김환균씨는 강진이 고향이고 MBC 피디출신으로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을 지내고 현재는 대전MBC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의뢰한 내용은 김환균씨의 증조부이신 경회당 김영근선생이 1906년 간도로 망명을 가기위해 장흥 강진을 떠난 경회당 김영근 ,홍의재 위봉 등 일행들이 망명을 위한 이동중에 방문한 함경도 신흥군 원평면 우상촌 위씨 집성촌에서 만나 신세를 진 장흥위씨 종친들에 대한 신원 의뢰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상촌의 위씨 집성촌에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 성과 자 그리고 이름으로 기록 되어 있어 족보등에 자료만 남아있다면 신원확인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김환균씨가 저에게 보내온 이메일 내용의 일부입니다...
경회당 김영근, 홍의재 위봉, 후포(後圃) 조동겸(趙東謙), 자가 인부(仁夫)인 홍병원(洪秉元), 경회당의 아들 효주(孝柱) 등 5 사람이
1906년 5월 19일 강진을 떠나 간도로 가는 여정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일기는 1906년 8월 21일 석산령(石山嶺) 너머 어은동(漁隱洞)을 떠나는 데서 끝납니다.
그러나 《遠遊日錄》 표지에 '乾'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坤' 권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전하지 않습니다.
경회당의 다른 글에 보면, 간도에 갔다가 이듬해 4월이 되어 춘천 가정의 의암 유인석을 방문한 것으로 보아,
그해 겨울을 간도에서 나신 거죠.
살펴봐 주십시오.
김환균
대전MBC / 사장
약120여년전 경회당 김영근선생이 남긴 기록속의 장흥위씨 선조님들의 행적과 신원을 찾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탁마재 재치...
* 위봉(魏棒 철종14년 1863 ~1943) 향년 81
長興魏氏 30世 안항공파, 字는 대언(大彦), 號는 弘毅齋, 진사 위문덕의 5대손.
父는 魏世祚, 母는 金海金氏 金俊譯의 女. 冠山 古下面 桂春里生. 강진 오남 김한섭 선생의 제자이다. 면암 최익현 선생에게 보낸 간찰 6통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술합방 후 翌年 3월 가족을 이끌고 間島 和龍縣 西城村 南陽情舍에 정착했다.墓는 미상. 配는 해남윤씨다.대동보 3권 124페이지. 일반적으로 '봉식'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족보에는 '봉'(1863∼?)으로 되어 있다.
*경회 김영근(1865~1934)선생은 구한말 강진 태생의 유학자이다. 조선 후기의 격동기와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조선의 선비이다. 노사 기정진과 화서 이항로의 학맥을 계승하였고, 평생을 '위정척사'와 '항일호국'의 정신 속에서 살았다. 김영근은 나라가 위태로움에 처하자 1906년과 1913년 두 번에 걸쳐 간도 망명을 결행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후에는 후학들을 길러내는 한편, 인도공의소 등 유림 조직의 일에 적극 참여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김영근 문집 등 서적 29권 및 유묵13점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다. 2013년 9월 25일 강진군의 향토문화유산 제5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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