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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박수량 백비와 영천리 방울샘...20221030...

HL3QBN 2022. 11. 1. 21:04
장성 박수량 백비와 영천리 방울샘...
20221030...

일요일 장성 축령산(621m) 트레일러닝후에 펜션에 돌아와서 조식후에 일행들과 장성댐에 가기전에 평소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박수량 백비'를 찾았습니다...

'박수량 백비'는 아곡 박수량이 40여년 동안 관리 생활을 하면서 두번에 걸쳐 청백리에 녹선되었는데, 그가 죽은 후 그의 청백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묘 앞에 세운 호패형 비(碑)로 일명 백비(白碑)라 부릅니다.

아곡 박수량은 1514년(중종 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우참찬(右參贊)등 직책이 경상(卿相)의 지위에 이르렀으며, 1546년(명종 원년)과 1551년(명종 6년) 2번에 걸쳐 청백리에 녹선되었습니다.

일찍이 자식들이 셋집을 마다하고 서울에 집을 지으려 하자 크게 꾸짖기를「나는 본래 시골 출신으로 외람되게 성은(聖恩)을 입어 판서의 반열에까지 올랐으니 분수에 넘는 영광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어찌 서울에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라며 자주 타일렀다. 또 죽음에 이르러서는 「죽은 후에 절대로 시호(諡號)를 청하거나,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하였다고 합니다.

1554년(명종 9년) 그의 부음을 아뢰자 명종은 이틀 동안 정무를 철폐하고 예관을 보내어 유제(諭祭)하였는데, “박수량의 집이 곤궁하여 상사(喪事)를 치를 수도 없고 시골로 내려가는 것 역시 어렵다 하니, 일로(一路)에 관인들로써 호송케 하고 장사 비용을 제급하고 증직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국가의 특별한 부의로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이 호패형 무서백비(無書白碑 글씨없는 하얀 비석)는 청백리 박수량의 청빈한 삶의 정신을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귀감이 되게 하는 상징적인 유물로서 그 의미가 큽니다...
박수량 백비는 직접 만져보니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표면이 매끈한 것이 대단히 신비스러웠습니다...
이어서 장성읍 영천리에 있는 '영천리 방울샘'을 찾아갔습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86호로 큰우물속에서 공기방울들이 방울방울 올라옵니다...
주소는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1415-3번지입니다.
공기방울이 간헐적으로 계속 뽀글뽀글하면서 올라오는게 보이는데,
물이 방울처럼 솟아올라 방울샘 또는 영천(鈴泉)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재생
즐거운 일탈의 시간이었습니다...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게 음주와 담소를 나누고...
새벽에는 축령산까지 맑은 공기속을 뛰면서 헐떡댔고...^^
평소 와보고 싶었던 박수량 백비와 영천리 방울샘도 마눌님과 데이트를 하면서 찾아봐서 궁금증도 해소되고...

이태원의 큰사고만 없었어도 더 재밌고 흥미로웠을 것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날들입니다...

탁마재 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