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酬萬淵禪老(수만연선노) - 원감국사 복암 충지(圓鑑國師 宓庵沖止)(1226 ~ 1293)

HL3QBN 2017. 12. 24. 12:12

天寶沙門(천보사문, 편자 김규정) 위문관련 시문(8)


酬萬淵禪老(수만연선노)

만연 선로와 수창하다.


원감국사 복암 충지(圓鑑國師 宓庵沖止)(1226 ~ 1293)


北羽南麟變一身(북우남린변일신)

북우나 남린이나 변하면 함 몸뚱이


誰言會合兩無因(수언회합양무인)

누가 두 사람 회합은 인연 없다고 말할까.


共爲闕里門箭客(공위궐리문전객)

한때는 함께 궐리의 문전 객이 되었고


同作曺溪路上人(동작조계로상인)

지금은 조계산 길을 걷는 같은 운수승이라.


詩韵縱難追俊逸(시운종난추준일)

시운은 매우 뛰어나서 따라가기 어렵고


家風猶可較淸貧(가풍유가교청빈)

가풍은 청빈해서 오히려 비교할 만하구나.


平生出處都相似(평생출처도상사)

평소 출처도 모두 이와 비슷하니


但愧枯株不受春(단괴고주불수춘)

마른나무 등걸에 봄 오지 않을까 부끄럽다.


*.北羽南麟(북우남린) -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서로 통할 것이라는 말이다. 북우와 남린(南麟)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붕(鵬)이라는 새와 곤(鯤)이라는 물고기를 가르킨다.


*.闕里(궐리) -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의 구리(舊里)로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여기서는 유학을 공부했다는 말이다.


*. 만연사(전남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만연산(나한산) 밑에 있다.)

만연사는 척불사상(斥佛思想)이 한창이던 조선시대 초기에도 자복사(資福寺)로 남아 있었을 만큼 비중 있는 고찰이다. 그러나 이 절에 관한 문헌이나 사적비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만연선사가 창건하였다는 설화만이 전하고 있다.

만연사 창건주로 알려진 이 만연선사는 실제로 사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설화에서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던 선사가 무등산 중봉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가던 길에” 만연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은 송광사와 관련이 있는 스님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수선사 제6세인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冲止, 1226 ~ 1293)스님의 『원감록(圓鑑錄)』에 보이는‘만연선노(萬淵禪老)’‘만연지공(萬淵之公)’이라는 인물이 바로 이 만연선사일 것으로 추측된다.



# 원감국사 복암 충지(圓鑑國師 宓庵沖止 고려 고종131226~고려 충렬왕191293)

속성은 장흥 위씨(長興魏氏). 이름은 위원개(魏元凱). 법명은 법환(法桓), 改名은 충지(沖止).自號는 복암(宓庵). 長興府 府內坊 출신이다. 19세 때(고려 고종311244) 문과(文科)에 장원(壯元)급제하여 한림학사와 추밀원부사를 지냈다. 29세에 선원사(禪源寺)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서 승려가 되었다.원오(圓悟)의 법을 이어 조계산(曹溪山) 6세 국사이다. 시호(諡號)는 원감국사(圓鑑國師)이고 탑호(塔號)는 보명(寶明)이다. 세수는 67세이고 법랍은 39년이다. 조선조 서거정 등에 의해 편찬된  <東文選>에서는 승려로서 가장 많은 시문을 남겼다.


재치(財痴)...


사진설명 : 201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촬영한거임...일주문 편액은 "나한산 만연사"라고 되어 있는데 나한산은 만연산의 다른 이름입니다.만연산은 몇년전 5,000만원에 판매된 2kg짜리 물찬 더덕이 발견되기도 했었던 곳으로 현재는 산의 대부분이 무등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