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시문(長寧詩文, 저자 김규정) 위문관련 시문(10)
竹谷懷古(죽곡회고)
죽곡에서 옛날을 회상하며
朴公壽龜江亭故址 ㅇ虛舟朴公號(박공수귀강정고지 ㅇ허주박공호)
박공 수귀의 강정 옛터이다. ㅇ 허주는 박공의 호이다.
三足堂(삼족당) 魏世寶(위세보 1669 ~ 1707)
古宅靑山下(고택청산하)
고택 푸른 산 아래
虛舟碧海邊(허주벽해변)
빈 배 파란 바닷가에 있다.
可憐歌舞地(가련가무지)
노래하고 춤추던 곳 가련하니
風月滿江天(풍월만강천)
바람 달은 강 하늘에 가득하다.
번역자 注)
위 시가 밀양 박씨 낙촌공파 파보 박수귀의 면주기사에도 실려 있는데 작자가 박수귀라 한다.
옮긴이 注)
본 시는 『삼족당유고(三足堂遺稿)』3권 1책의 권1에 실려있습니다.
魏世寶(위세보 24세 장천문중 안항공파 현종10년 1669 ~ 숙종33년 1707) 향년 39
字는 국미(國美), 號는 삼족당(三足堂).석병(石屛).본관은 長興,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서 위동식(魏東寔)과 영광김씨(靈光金氏) 부산파(夫山派) 김진(金振)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詩.書.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작은 집이지만 운신할 수 있으니 족하고 끼니를 이을 수 있는 전답이 있으니 족하고 시와 서를 접할 수 있으니 족하다하여 삼족당(三足堂)이라 自號했다.
21세 때(숙종15년 1689) 靈光金氏 김정길(金鼎吉)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30세 때 (숙종24년 1698) 부인 金氏가 세상을 떠나자 아우 춘담공과 살림을 합쳐 같이 살았다.
31세(숙종25년 1699) 水原白氏 백명시(白命蓍)의 딸에게 다시 장가 들었다.
39세(숙종33년 1707) 가을에 장천재에서 요병했고 겨울에 삼족당에 돌아와 임종구호 시 1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짧은 인생을 깨끗하고 선량하게 산 시골의 선비로 그가 남긴 예술혼은 꺼지지 않고 지금까지 신화로 전해온다.
가학을 일으키자 아들 영이재 위문덕,손자 존재 위백규,서계 위백순이 세상에 알렸다.
탁마재 재치(財痴) 쓰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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