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次松花臺韻(차송화대운)三足堂(삼족당) 魏世寶(위세보)...

HL3QBN 2017. 1. 19. 21:18

장령시문(長寧詩文, 저자 김규정) 위문관련 시문(9)

 

次松花臺韻(차송화대운)

송화대 시에 차운하다.

 

三足堂(삼족당) 魏世寶(위세보 1669 ~ 1707)

 

松含千古色(송합천고색)

소나무 천고의 빛을 머금고

 

竹帶一川秋(죽대일천추)

가을 대나무 온 시내 둘렀다.

 

臺上人不見(대상인불견)

누대 위는 사람 보이지 않고

 

虛浮載月舟(허부재월주)

빈 배만 달 빛 싣고 떠간다.

 

 

번역자 注)

죽천(竹川) 하류 남쪽 기슭에 송화대(松花臺 관산읍 죽청리에 있었다고 함(옮김이))가 있었는데 허주자(虛舟子) 박수귀(朴壽龜)의 강각(江閣)이었다. 이곳에 와서 위 시를 지었다. 박수귀의 아들 박만초(朴萬礎)는 당시 서울에서 작문에 능숙한 자였다.

그는 이 시구를 보고 이 사람은 옛날의 선재(仙才)라고 감탄했다.

박수귀는 영의정 밀양부원군 박승종(朴承宗)의 손자이다.

박승종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손녀딸이 광해군의 세자빈이었고 영의정으로서 국정의 실정을 통감하여 한낮에 아들 박자흥(朴自興)과 목매에 자결했다.

밀양 박씨 낙촌공파로 살아남은 이 일족이 장흥에 정착한다.

박수귀는 용산면 금곡 의정부 좌찬성 김여중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당시 여러 문사(文士)들의 문집에 글이 보이며 호걸남아였다.

호를 허주자(虛舟子),산목당(散木堂)이라 했는데 허주(虛舟)는 '빈 배'라는 뜻이고 산목(散木)은  '산에 쓸데없는 나무'라는 말이다.

 

魏世寶(위세보 24세 장천문중 안항공파 현종10년 1669 ~  숙종33년 1707) 향년 39

字는 국미(國美), 號는 삼족당(三足堂).석병(石屛).본관은 長興,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서 위동식(魏東寔)과 영광김씨(靈光金氏) 부산파(夫山派) 김진(金振)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詩.書.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작은 집이지만 운신할 수 있으니 족하고 끼니를 이을 수 있는 전답이 있으니 족하고 시와 서를 접할 수 있으니 족하다하여 삼족당(三足堂)이라 自號했다.

21세 때(숙종15년 1689) 靈光金氏 김정길(金鼎吉)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30세 때 (숙종24년 1698) 부인 金氏가 세상을 떠나자 아우 춘담공과 살림을 합쳐 같이 살았다.

31세(숙종25년 1699) 水原白氏 백명시(白命蓍)의 딸에게 다시 장가 들었다.

39세(숙종33년 1707) 가을에 장천재에서 요병했고 겨울에 삼족당에 돌아와 임종구호 시 1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짧은 인생을 깨끗하고 선량하게 산 시골의 선비로 그가 남긴 예술혼은 꺼지지 않고 지금까지 신화로 전해온다.

가학을 일으키자 아들 영이재 위문덕,손자 존재 위백규,서계 위백순이 세상에 알렸다.

 

재치(財痴) 쓰고 옮김...

 

 

사진은 대둔산 월성봉의 안개속 소나무(20140202)...직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