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야기

철기 이범석과 세퍼드...

HL3QBN 2015. 9. 15. 08:03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

 

청산리전투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으며...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김구,이승만등 건국초기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왈가왈부 갑론을박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위대한 군인이자 독립투사가 세퍼드와 함께 한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귀한 사진임에는 분명합니다...

(광복군 2지대장 시절 찍은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만해도 세퍼드는 대단히 귀한 서양 견종이었을텐데...

 

재치(財治)...

 

 

  이범석 장군 공적  

 

 

이범석 장군(1900.10.201972.5.11)은 서울 용동에서 출생하여 1915년 여운형의 권유로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그 후 민족 지도자 신규식의 주선으로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에 입학하여 기병과(騎兵科)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31운동 소식이 알려지자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장교직을 사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하여 독립군 장교 양성에 진력하였으며, 19204월에는 왕청현에 있는 북로군정서로 가서 600명의 생도들을 독립군 장교로 교육함으로써 한국 독립군 전사 가운데 가장 찬란한 전과를 올린 청산리 대첩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201021일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하고 청산리 백운평에서 유리한 지리 지형을 이용, 일본 토벌군 주력부대를 강타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대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김좌진과 함께 북로군정서군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10여 차례 격전을 치러 큰 승리를 거뒀다.


1940917일에는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의 핵심부대라 할 수 있는 제2지대장으로서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하여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할 계획을 세우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194663500여명의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조국에 돌아왔다.


1946년에는 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민족국가 건설에 힘썼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군 창설과 육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