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흔적을 찾아보는 여행(2015년2월28일)
(충남 보령 옥마산,남포관아,논산 강경 고려명신십칠현숭모비, 미내다리)
행원문중 괴봉공파의 23세는 산보,정보,국보,서보 네분이 계시는데 그중에서 정보(廷寶)의 자는 자고(子固), 호는 퇴우당(退憂堂)으로 광해군 12년(1620년)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을 지낼 때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飾)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남포현감(藍浦縣監)에 임명되었으며, 선정(善政)을 베풀어 유애비(遺愛碑)가 세워졌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보첩에도 “갑술(甲戌)에 선제도사(旋除都事)하며 삼월(三月)에 이비랑(以備郞)으로 출수남포(出守藍浦)하여 치유수적(治有殊積)하니 유비(有碑)하다.”라는 글이 보입니다.여기에서 출수남포(出守藍浦)는 남포현감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며 치유수적(治有殊積)하니 유비(有碑)하다는 글은 다스림에 있어 뛰어난 공적이나 공훈이 있다는 뜻으로 마지막에 유비하다라는 글에서 아마도 비석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지금도 비석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남포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였더니 남포는 충남 보령군 남포면으로 과거 남포현이 있었는데 지금도 남포읍성,남포관아등이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관아앞에 비석도 몇 개 보이더군요.또한 남포는 사람들에게 남포벼루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대전종친회 2월정기모임자리에서 답사관련하여 2월28일(토)로 답사 일정을 확정하고 신복(35세,괴봉공파)종인과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습니다.그런데 종친회 모임자리에서 용수(34세,운암공파)종인이 과거 논산시 강경읍에 살 때 가끔 산책을 즐겼던 강경역 인근의 채운산(해발 57m)에 위씨 관련 비석이 있었다는 제보가 있어서 일정을 조정하여 강경읍 채운산 비석까지 답사하기로 하였습니다.
일정은 2월28일(토)에 보령시 뒷산인 옥마산(해발601m) 산행과 아마추어무선의 SOTA(산정상교신)을 하고 하산후 남포관아와 남포읍성,남포향교등에 들려서 비석들을 확인하고 다시 논산시 강경읍 채운산(해발57m)으로 이동하여 답사후에 귀가하는 것으로 일정을 확정하였습니다.
아직 겨울의 여운이 남아있는 2월28일(토) 아침 07시경에 신복형님과 아마추어무선사인 다른 동행인 한 분 이렇게 총3사람이 대전을 출발하여 공주,부여를 지나서 보령에 도착했습니다.현재 고용노동부에 근무중인 신복형님은 과거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에 근무하실 적에 형님은 옥마산 중턱까지는 많이 가 보셨지만 정상은 아직 가 보질 못했다고 하더군요.대영사라는 사찰의 입구에 주차하고 옥마산 정상까지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따뜻할 것 같은 날씨에 적당히 옷을 입고 출발을 했었었는데, 그런데도 중턱쯤 올라가자 땀이 나길 시작했습니다.정상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니 방송국과 통신사의 중계탑들이 있었는데 정상석은 한참 아랫쪽에 있어서 한참을 찾았습니다.옥마산이라는 지명의유래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그리고 신라의 멸망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정상 주변을 둘러보고 안테나를 설치하고 아마추어무선의 산정상 교신을 시도하여 경기도 평택,화성,송탄,수원등과 교신을 하였는데 그사이에 온도가 급격히 하강하여 엄청 추웠습니다.교신완료후 안테나등 통신장비를 철수하고 안전하게 하산하였습니다.조금 움직이니 추위가 덜해지더군요.
하산후에는 약6km정도 거리에 있는 보령시 남포읍성으로 이동하여 비석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아직도 남아있는 남포관아는 남포읍성의 출입문이자 외삼문인 진서루와 내삼문인 옥산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문앞에는 몇 개의 비석들이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한 개는 무명비이며 나머지는 글자를 읽을 수가 있었는데 우리가 찾는 할아버지의 비석은 없었습니다.옥산아문을 통과하면 과거 남포현감이 집무를 보던 남포동헌이 나오는데 구름끼고 싸늘한 기온에 을씨년 스럽기만하더군요.하지만 비석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결국 비석은 못 찾고 남포관아를 뒤로하고 남포향교로 향했습니다.하지만 남포향교에서도 관려된 비석은 못찾고 아쉽게 남포읍성 및 관아,향교의 답사를 마쳤습니다.
남포읍성에서 승용차로 무창포IC,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남하하여 금강을 건너 군산IC에서 나와서 논산시 강경읍으로 향했습니다.논산평야의 가운데 위치한 강경읍은 금강하구둑이 생기기전까지는 물류의 집산지로서 서해의 풍부한 해산물과 곡창지대의 농산물이 만나서 큰 시장을 형성했던 지역입니다.현재도 강경젓갈시장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착한 곳은 강경역 인근의 채운산, 해발고도는 겨우 57m이지만 평야지대에서 57m는 제법 산의 형태를 보여줍니다..백제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용암사앞에 주차하고 산보삼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면 정상이 평평하고 제법 공원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강경읍민체육공원이다.정상에 탑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고려명신십칠현숭모비’라는 비문에 앞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숭모비는 고려초부터 말기까지 충신 十七賢을 숭모하는 비인 바 조선태조대왕께서 경기도 마전(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숭제전을 창건하고 고려태조,현종,원종,문종 四王의 위패와 四太子의 철상과 十三賢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제향을 五百여년을 거행하던중 6.25당시 파괴 소실되어 一九七四년도에 박정희대통령이 중건하였으나 위패도 행사도 없으므로 배무열공의 후손 배기영씨가 발기하여 이곳에 세웠다.이곳은 무열공이 백제의 견훤과 싸워 승전한 곳으로 우리 다같이 보호합시다라고 되어있었습니다.배무열공(휘 현경)은 고려 개국공신의 한 분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분입니다.
‘고려명신십칠현숭모비’라고 적혀진 비문은 배무열공 휘 현경,복무공공 휘 지겸,신장절공 휘 숭겸,유충절공 휘 금필,홍충렬공 휘 유,서장위공 휘 희,강인헌공 휘 감찬,윤문숙공 휘 관,위충렬공 휘 계정,김위열공 휘 취려,조문정공 휘 충,김문열공 휘 부식,김충렬공 휘 방경,안문성공 휘 향,이방실,난계 김득배,정문충공 몽주등 총 고려명신17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배현경,복지겸,신숭겸,유금필,홍유는 개국공신들이며 그외분들는 고려시대를 통틀어 명신으로 추앙받으신 분들입니다.그중에서 9번째에 반갑게도 5세조(위충렬공 휘 계정)께서 계셨는데 반갑기가 그지 없었습니다.이비석은 단기 4,312년(서기 1979년)에 세워졌는데 비석에 새겨진 숭모회원 명단에는 위계상, 위옥환, 위성일, 위계본, 위욱량, 위용철, 위석한종인등 총7분이 계셨습니다.
숭모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어서 이동한 곳은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인근에 있는 미내다리입니다.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미내다리는 원래 위치가 아닌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다리의 기능은 상실하였지만 그옛날 강경이 번성할 즈음 배로 다니던 전라도와 충청도를 이어주던 중요한 기능을 하던 다리였다고 합니다.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는 미내다리는 현재 강경천옆에 있으며 다리길이는 30m,너비 20.8m,높이 4.5m로 지금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넓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우마차가 다니는 튼튼하고 웅장한 다리로 건설되었으며 삼남지역에서는 제일 큰 다리였다고 합니다. 논산이나 강경에서 전해지는 미내다리에 대한 이야기 중에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이 지역 출신들에게 논산의 개태사 철확(쇠솥단지)과 관촉사의 은진미륵, 그리고 강경 미내다리를 보고 왔냐고 물어본다고 합니다.누가 죽었다 되돌아와 전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그만큼 지역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던 명물이란 이야기로 판단됩니다.
“출수남포(出守藍浦)하여 치유수적(治有殊積)하니 유비(有碑)하다.”라는 보첩의 작은 글에서 시작된 이번 여행은 비록 남포관아에서 비석을 찾지는 못했지만 보령 옥마산,남포관아,남포향교,강경체육공원의 고려명신십칠현숭모비,미내다리등을 둘러 본 후 귀가하였습니다.나름 의미를 부여할만한 좋은 날이었으며 ‘고려명신십칠현숭모비’의 발견은 숭모비가 건립된 세월이 비록 짧지만 고려명신으로 추앙받으시는 5세조에 대하여 후손으로써 자부심을 갖고 연구심을 갖기에 충분한 하루였습니다.여행중에 아니면 산책중 주변에 무관심하게 봤었던 조형물과 석물등에서 선조의 흔적을 찾는 귀중한 경험을 많은 분들이 누렸으면 합니다.
답사여행후 자료를 찾다보니 현재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숭의전지에서는 숭의전에 고려4왕(태조,현종,문종,문종)을 모시고 배신청에 16공신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데 복지겸,홍유,신숭겸,유금필,배현경,서희,강감찬,윤관,김부식,김취려,조충,김방경,안우,이방실,김득배,정몽주등이며 이곳에는 5세조 충렬공과 안향이 빠져 있으며,강경체육공원의 숭모비에는 숭의전지의 16공신에서 안우가 빠져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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