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송광사 '원감국사 보명지탑 봉심기'의 위치에 대한 의문...

HL3QBN 2026. 5. 1. 10:12
송광사 '원감국사 보명지탑 봉심기'의 위치에 대한 의문...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위치한 송광사 감로암 인근에 원감국사의 부도 보명탑이 있다.

원감국사 복암 충지(圓鑑國師 宓庵沖止 고려 고종13년1226~고려 충렬왕19년1293)

속성은 장흥 위씨(長興魏氏). 이름은 위원개(魏元凱). 법명은 법환(法桓), 改名은 충지(沖止).自號는 복암(宓庵). 長興府 府內坊 출신이다. 19세 때(고려 고종31년1244) 문과(文科)에 장원(壯元)급제하여 한림학사와 추밀원부사를 지냈다. 29세에 선원사(禪源寺)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서 승려가 되었다.원오(圓悟)의 법을 이어 조계산(曹溪山) 제6세 국사이다. 시호(諡號)는 원감국사(圓鑑國師)이고 탑호(塔號)는 보명(寶明)이다. 세수는 67세이고 법랍은 39년이다. 조선조 서거정 등에 의해 편찬된 <東文選>에서는 승려로서 가장 많은 시문을 남겼다.

여러번 보명탑을 찾은 사람은 보명탑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오랜만에 방문하거나 처음가면 들머리를 찾기가 참으로 어렵다.

보명탑을 찾아 예를 갖추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보명탑이 있는 석축 아래에 작은 비석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원감국사보명지탑봉심기'...가 있다.

그런데 어찌해서 검은 비석의 여러곳에 상처가 보인다.
억지로 한 것 같지는 않지만 보기는 좋지 않다.

출생-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원봉하
서기 1226년 11월 17일 부 휘 소 모 원방대부인 송씨의 장남으로 출생
속명-위원개 자호-복암
법휘-법환, 충지
입적-서기 1293년 1월 10일
다비-서기 1293년 1월 20일
시호-원감국사(송광사 제6세 국사)
탑호-보명
사적-송광사경내 감로암전학두등 원감국사 비문에 상재
 

뒷편에는

忠烈王(충렬왕)께서 園監國師(원감국사)라 諡(시)하시고 塔額(탑액)을 寶明(보명)이라 賜(사)하시다. 이 塔에 國師(국사)의 遺骨舍利(유골사리)를 魄(백)으로 奉安(봉안)하니 魂(혼)과 함께 잠드시다.
西紀 1993년 2월 20일 장흥후손 11명이 대경 고경스님의 안내를 받아 처음으로 이 塔(탑)을 參拜(참배)하니 距今(거금) 七百年前에 세워진 그塔(탑)이다. 너무나도 긴긴 沈默의 細月(세월) 蓄積(축적)된 言語(언어)들을 盤石(반석)엔들 다 세기랴? 설레이고 뭉클한 가슴을 달레어 큰절하고 默念(묵념)하며 高潔(고결)한 生涯(생애)를 기리면서 標識(표지)의 돌을 여기 세운다.

西紀 1993년(癸酉 계유) 4월 일
長興魏氏宗親會(장흥위씨종친회) 謹竪(근수)
 

원감국사 보명탑이 있는 석축 아래에 위치해 있다.

2024년 3월에 여러 종친들과 어렵지 않게 찾아갔을때에도 이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근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우연히 찾은 사진 한 장에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원감국사보명지탑봉심기'가 원감국사 보명탑의 바로 앞옆에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전체적으로 검은 오석에 생채기도 없다.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누가 언제 봉심기는 석축 아래로 내렸는가? 의문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계사 위성호종친이 원감국사 보명탑을 찾기 위해 수차례 송광사와 감로암을 방문하고 조계산 일대를 조사한 천신만고의 이야기는 계사 위성호종친의 저서 '계사소고' 상권 121페이지~131페이지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1993년 2월 초순에 보명탑을 찾기 위해 송광사를 찾은 종친은 용철(容喆), 성기(聖基), 정량(定良), 황량(滉良), 계현(啓玹), 옥환(玉煥), 성렬(聖烈), 성량(成良), 봉환(俸煥), 준환(準煥), 성호(聖浩)등 총 11명임을 기록했다.

계사공의 노력으로 원감국사 보명탑을 찾고 결국 찾아서 봉심기를 근수했지만...

왜 '원감국사 보명지탑 봉심기'는 옮겨졌는가? 장흥위씨 종친중에서 이에 대해 아시는 분은 제보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장흥위씨도문회 부회장 재치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