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와 위정열(魏廷說)그리고 기록의 오류들...

HL3QBN 2026. 3. 18. 21:34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와 위정열(魏廷說)
그리고 기록의 오류들...

1993년에 발행된 '화순군사(和順郡史 화순군사편찬위원회)'에서 장흥위씨 두 분(위정열 위홍원)을 찾았습니다. 그첫번째로 기록된 분은 '무과 위정열 또는 위정설'로 읽을 수 있는 분입니다.
화순군사의 내용중에

'최경회장군과 순절한 이는 현감 허일, 경정 권극평, 군수 고득뢰, 판관 송대창, 주부 김예수, 진사 문홍헌, 유학 구희, 주부 최희립, 판관 노희상, 생원 이영근, 부장 최억용, 유학 안기중, 수문장 노언경, 만호 오방한, 유학 박혁기, 유학 노자니, 주부 안기남, 선전 정봉수, 생원 정현보,무과 위정설, 유학 최개 등과 군사들이었다.(일휴당집에 의함)'

화순군사에 최경회장군과 순절(뜻을 굽히지 않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한 분중에 '무과 위정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화순(능주)출신의 최경회장군은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장으로 그리고 2차 진주성 전투때에는 경상우병사로 참전하였습니다. 최경회하면 모른 분들이 많으시지만 의암부인 논개의 남편이다라고 하시면 아실 것 같습니다. 화순이 고향으로 3형제가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참전하였는데 최경운 최경장 최경회가 그 당사자들입니다.

위정열은 자료수집 과정에서 '위정설'로 되어 있는 곳도 있었으며 화순출신으로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0세때인 1609년 기유년 증광시 병과 19위로 무과에 급제한 기록을 발견하였습니다.

급제 당시 전력은 교위(校尉)로 하급 군인의 신분이며 본관과 거주지는 장흥(長興)입니다. 부친은 당시에 군자감 직장이며 선무원종공신 위덕원(魏德元 장흥위씨 21세 1549~1616 공조참의)입니다.

 

 

생년은 1580년으로 2차 진주성전투가 일어난 1593년에는 14세 전후였습니다. 또한 순절(전사)하였다는 기록은 오기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장흥위씨 1999년 기묘대동족보에 '어깨에 화살을 맞았으며 병으로 귀가하여 이내 돌아가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1593년 2차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또한 화살은 맞아 부상 당한 것으로 추정되나 병으로 귀가하여 이내 곧 돌아가신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1609년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아들 '동선'이 1621년생 입니다. 돌아가신 해는 기유년(己酉年 1669년)으로 출생한 경진년(庚辰年 1580년)을 계산하면 거의 9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몇년전 철거중인 앞집에서 우연히 얻은 '화순군사'에서 발견한 장흥위씨 선조를 발견하고 조금씩 조사하여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필자의 자료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한 것이니 혹시나 틀린 내용이나 이상한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이의를 제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장흥위씨도문회 부회장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