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사박(魏士璞) 선조님을 아십니까?
1651년(효종2년)에 국가에 7가지의 경사로 인해 실시된 임시로 치러진 과거 즉 별시가 있었습니다. 이때에 장흥위씨는 총3분이 급제하셨는데 위종(23세 장천문중 판사공파), 위상표(22세 행원문중), 위사박(26세 사월문중 덕원부사공파)입니다.



특히 위사박(魏士璞)선조님의 경우에 여러가지 안타까운점이 있어 보입니다.
1999년에 간행한 장흥위씨족보 기묘대동보에서는 휘자(이름)만 있을 뿐 행장의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양자(계자) '세단'의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위사박선조님은 장흥위씨 26세로 사월문중 덕원부사공파입니다. 특히 위사박선조님의 조부님(할아버지)은 임진왜란때의 공적으로 선무원종이등공신인 훈련부정공(휘 공준公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곳에서 위사박선조님의 휘자(이름)을 잘못 읽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아래는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자료에는 '위사업'으로 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합격자 정보 디지털 아카이브(https://dh.aks.ac.kr/~sonamu5/wiki/index.php/SEDB:%EA%B3%BC%EA%B1%B0_%ED%95%A9%EA%B2%A9%EC%9E%90_%EC%A0%95%EB%B3%B4_%EB%94%94%EC%A7%80%ED%84%B8_%EC%95%84%EC%B9%B4%EC%9D%B4%EB%B8%8C)에서도 '위사업(魏士璞)'으로 읽고 있으며 또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흥위씨 족보중에서 1759년에 발간된 최초의 족보 '기묘초보"에는 약간의 행장내용이 있으며 위사박선조님의 무과 급제와 첨사 역임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아들 '세단'의 행장도 있습니다. 그나마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璞' 이 글자는 옥돌박字로 왠만한 옥편에는 나오지 않는 글자입니다.
어떤 연유로 위사박선조님의 기록이 사라졌지는 알 수 없지만 후손에 대한 자료도 없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후손이 없는 관계로 신경쓰는 후손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위사박선조님은 1999년 발행 기묘대동보 사월파 6권 70페이지 26世에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다만 여러곳의 자료에서 '위사업'이 아닌 '위사박'으로 환원되길 바라면서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자료협조 : 호산 위신복 족보편찬연구위원
탁마재 재치 위현동...
'장흥 위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당황스럽고 재밌는 플랜카드(위계조 위은환)발견... (0) | 2025.09.11 |
|---|---|
| 鑑軒(감헌) 위규복 유묵 2점 소개... (0) | 2025.09.10 |
| 방목(榜目)은 무엇인가? (8) | 2025.08.26 |
| 1695년 무과 급제 위정장(魏挺章)에 대해서... (3) | 2025.08.25 |
|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를 둘러보다...20250819... (3) | 2025.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