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고려사에 나오는 위제만(魏齊萬)...

HL3QBN 2025. 8. 24. 09:33

고려사에 나오는 위제만(魏齊萬)...

1999년에 장흥위씨 족보(기묘대동보)를 발행할 때에 고려와 관련된 기록물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선대의 족보에서 어떠한 이유인지 직계로 인정하지 않아서 기록하지 않은 12분이 있습니다... 다만 후대에 고증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후손으로써 꾸준히 기록을 찾아서 고증하고 혹여나 고증이 된다면 반영하여야 합니다...

그중에서 '위제만'이라는 분에 대해서 몇자 적어봅니다...


위제만은
[고려문과] 문종(文宗) 5년(1051) 신묘(辛卯) 신묘방(辛卯榜) 을과(乙科) 6위(6/22)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1990년에 발행된『高麗時代 蔭叙制와 科擧制 硏究』(朴龍雲, 一志社, 1990.[345-107])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제만은 고려사(高麗史)》 권(卷)71 지권제(志卷第)25 악(樂)2 속악조(俗樂條)의 내용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月精花
月精花 晉州妓也 司錄魏齊萬惑之 令夫人憂恚而死 邑人哀之 追言夫人在時 不相親愛 以刺其狂惑也(월정화 진주기야 사록위제만혹지 영부인우에이사 읍인애지 추언부인재시 불상친애 이자기광혹야)

월정화는 진주의 기생이었는데, 사록 위제만이 미혹되어 부인으로 하여금 근심하고 화가 나서 죽게 하였다.
읍인들이 이를 불쌍하게 여겨 부인이 살아 있을 때에 서로 친애하지 않은 것을 되새겨 말하여, 분별없는 미혹을 풍자하였다.

사록(司錄)은 고려시대 목·도호부·유수관에 파견한 7품 관직이었습니다. 정원은 목과 대도호부에서는 1명으로 장서기를 겸했는데  동경유수관에는 7품인 사록참군사와 장서기를 1명씩, 남경유수관에는 사록·참군사·장서기를 1명씩 두었습니다. 사록과 사록참군사라는 명칭은 경우에 따라 병행해서 사용한 것 같다.

이들의 임무는 광범위하여 반란진압·도적체포·호랑이사냥 등 군사임무, 사역, 향리관할과 행정관리, 속읍 순찰, 제사, 사신접대 등 폭넓은 임무수행을 했다. 이같은 이유로 비록 품계는 낮았지만 보통 문과급제자를 임명했습니다.


위제만은 사랑꾼이었지만 본처를 돌보지 않아 진주백성들의 원망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서 선대를 연구하고 족보를 만드신 분들의 선대에 대한 고증 부탁도 있어서 조금 찾아봤습니다... 혹시라도 위제만에 대한 다른 자료나 기록을 찾으시면 제보 바랍니다...

탁마재 재치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