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방호선생문집에 실린 '정의현감으로 부임하는 위형만을 전송하며'...라는...한시에 대해서...

HL3QBN 2024. 12. 6. 08:00
방호선생문집에 실린 '정의현감으로 부임하는 위형만을 전송하며'...라는...한시에 대해서...

2021년 장흥문화원에서는 김희조의 방호선생문집과 위세옥의 간암선생문집을 문림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로 발간하였습니다.

‘방호집’은 김희조(1680~1752)의 시문과 사상을 모아 수록한 시문집입니다.
그리고 장흥을 중심으로 강진과 화순 등 전라도 서남 지역의 산천과 당시 사정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자료입니다.

‘방호집’은 2권 2책으로 1829년 후손인 김채규, 김종진 등이 주도해 1832년쯤에 간행됐습니다. 김덕현, 정재면, 김상학의 서문과 김익수의 발문이 있습니다.

1권에는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 육언절구, 오언장편, 고사가 있습니다. 2권에는 소, 서 제문, 그리고 끝에 영조 무신란 때의 성균관 수관사적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방호 김희조 선생은 본관은 영광, 자는 경선이며 부산면 내안리 흥룡동 출신으로 김순의 아들입니다. 문장으로 널리 알려졌고 특히 시를 잘했다고 합니다

그 방호선생문집에 위씨관련 한시가 한 수 있다는 제보를 받고 번역된 시를 보다가 이상한 점이 있어서 여러방면으로 조사중입니다...

우선 한시를 받은 '위형만'이라는 분입니다...

장흥위씨중에서 정의현감을 지낸 분은 딱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보성군수공입니다... 장흥위씨 25세로 행원문중 괴봉공파이며 해남현감을 지낸 휘 천상의 3남으로 드물게 3대가 무과에 급제한 집안입니다...

해남현감공( 24세 휘 천상) 보성군수공( 25세 휘 혁만) 적양첨사공( 26세 휘 원징)...입니다...

(장천문중 판서공파의 호조판서공(21세 휘 덕화), 병조참판공(22세 휘 정철), 상원군수공(23세 휘 동전) 집안도 3대 무과급제 집안입니다.)

그런데 번역된 방호선생문집에서는 위혁만(赫萬)이 아닌 위형만(衡萬)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오타 또는 오류인지 아니면 다른 위형만이라는 분이 계시는지 저도 헷갈리는 상황입니다...물론 거의 번역의 오류로 생각됩니다만은...

현재 방호선생문집을 번역한 록양 박경래선생에게 문의를 해놓은 상태지만 혹시나 우리 위씨문중의 종친중에서 방호집 원본을 갖고 계시거나 내용을 아시는 분이 계실지 하는 궁금한 마음에 글을 써서 올립니다...

보성군수공의 후손들은 주로 장흥과 제주도등지에서 살고 있었으나 장흥에 살았던 후손들은 알수 없는 이유로 멸손하고 현재는 제주도에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또한 보성군수공의 주요 교지 및 문서들은 대구 사는 원곡 위상복종친(행원문중 부장공파 김천출신)이 소유하고 있다가 현재는 방촌유물전시관에 기증하여 보존되어 있습니다...
보성군수공의 관직 이력은 장흥위씨도문회 산하 백강 위성록 족보연구위원회 총무위원이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①1696년(숙종 22) 6월 22일 아산만호, ②1705년(숙종 31) 2월 28일 임치첨사, ③1707년(숙종 33) 5월 11일 부호군, ④1710년(숙종 36) 12월 3일 겸내승, ⑤1710년(숙종 36) 12월 21일 낙안군수, ⑥1716년(숙종 42) 1월 23일 정의현감, ⑦1721년(경종 1) 7월8일 진해현감, ⑧1722년(경종 2) 1월 22일 경복궁 가위장, ⑨1723년(경종 3) 3월 14일 군산첨사, ⑩1724년(경종 4) 1월 28일 잉임사승전, ⑪1725년(영조 1) 3월 21일 부호군, ⑫1725년(영조 1) 12월 4일 보성군수, ⑬1726년(영조 2) 6월 2일 단부부호군, ⑭1728년(영조 4) 1월 11일 법성첨사 등 1731년까지 35년간 관직에 재임하면서 관직제수(官職除授), 의금부나인(義禁府拿因)사실, 서용(敍用), 전교(轉交), 장계(狀啓) 등 30건의 기록이 확인됩니다.

아래 사진은 제주 정의현 선생안으로 역대 정의현감의 이름과 재직기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자료협조 김희태 前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보성군수공의 아들 적양첨사공은 공의 백형(휘 태만)의 차남이었으나 보성군수공의 아들로 양자입적되어 무과방목에서는 친부 태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이 발간된뒤 바로 이사실을 알고 여러가지 조사를 하다가 생업이 바쁜 관계로 조사와 기록이 미뤄졌습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조사를 이뤄서 한시를 받은 주인이 누구인지 하는 의문점이 해소되길 기대해 봅니다...

또한 기록에 대한 내용으로 중요한 서적에 기록될 시에 한 번 잘못 기록되면 세월이 흐른후에 그후손들조차도 오류를 찾을 수 없음은 물론 오류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됨을 냉정한 머리로 생각해봐야 됩니다...

탁마재 재치 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