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문화현령공 휘 산보(山寶) 년표

HL3QBN 2023. 11. 3. 07:31

문화현령공년표.hwpx
0.10MB

 

문화현령공 휘 산보(山寶)

 

()는 자미(子美)요 호()는 망미당(望美當)이며 선조(宣祖) 계사(계사) 1593413일생이니 자성동(自成童)으로 기국(器局)이 이취(已就)하야 명동경향(名動京鄕)하며 연()14(十四)에 음사(蔭仕)로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하며 광해(光海) 경신(庚申) 1620년 투필등과(投筆登科)하여 인조(仁祖) 1636년 병자란(丙子亂)에 이선전관(以宣傳官)으로 호가남한(扈駕南漢)하여 궁부옥체(躬負玉體)하고 장입성(將入城)에 기갈(飢渴)이 최심(最甚)하며 상공(上供)도 역궐(亦闕)이어늘 공()이 읍진속반(泣進粟飯)함에 상()이 탄왈(嘆曰) 차미(此味)가 유승진미(猶勝珍味)하니 득어하처야(得於何處耶)하고 사의습(賜衣襲)하며 우수패검왈(又授佩劍曰) 이차(以此)로 한아(扞我)라 하시고 특배표신선전관(特拜標信宣傳官)하니 차함입노진(借啣入虜陣)하야 언대명환(言對明確)하고 쟁힐불굴(爭詰不屈)이러니 후()에 우익위동궁입반(又翊衛東宮入潘)하여 노적(勞績)이 최저(最著)하고 이훈련첨정호성정사일등훈(以訓鍊僉正扈聖靖社一等勳)으로 제문화현령(除文化縣令)하다. 효종(孝宗) 병신(丙申) 1656710일 종()하니 묘()는 부남포곡좌록간좌(府南蒲谷左麓艮坐)며 유갈(有碣)하니 사재보감급남한기(事載寶鑑及南漢記)하며 교리김우근(校理金羽根)이 찬갈명(撰碣銘)하고 순조(純祖) 임오(壬午) 1822년에 제배석천사(躋配石川祠)하다. ()는 숙인(淑人) 영광정씨(靈光丁氏)니 부()는 도사명열(都事鳴說) ()는 증참판양관제학행참의경달(贈叅判兩舘提學行叅議景達)이며 1222일에 졸()하니 묘()는 쌍조(雙兆).

 

문화현령공(휘 산보) 년표

1593 출생(413)

1607 승훈랑(6) 군자감 판관 (추정)

1609 봉훈랑(5) 군자감 판관 (만력 37712) 교지

1620 무과급제 병과 제1793(광해 13) 홍패

1637 선교랑 사복시 주부(6) (인조 15) (316) 교지

1637 정략장군 훈련원 첨정(4) (인조 15) (428) 교지

1637 정략장군 수 사도진관 방답수군첨절제사 종4(인조15)(622) 교지

1640 어모장군(3) 행 오위도총부 도사(5품직)(인조18)(319) 교지

1640 어모장군(3) 행 오위도총부 경력(4품직)(인조18)(49) 교지

1640 문화현령 (인조 18) (1227) 교지

1643 서용 (인조21) (46)

1644 객지(??)에서 병

1656 별세 (710)

 

 

 

文化公(山寶) 遺書문화공 (산보) 유서

 

내가 지금 죽음에 임하여 선친께서 경계한 말씀을 어렵게 기억하여 눈시울을 적시며 너희에게 한마디 적는다.

 

! 내가 종자로서 불행하게도 자식이 없어 네가 낳은 지 6개월 만에 포대기에 싸여 양자로 들어와 길렀으니 정이 내가 낳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너 또한 진심으로 받들어 섬겼으며, 너의 모친이 죽은 뒤에는 상중이었지만 한 가지도 섭섭함이 없었다.

 

내가 병중에 있을 때는 한결같이 시탕(侍湯)에 정성(精誠)을 쏟아 효도(孝道)를 다 했으니 가히 하늘에서 보낸 지극한 성품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정축(丁丑1637)년 난리(1636년의 丙子胡亂 이후)에도 길이 막혔는데 너는 도적의 칼날을 무릅쓰고 나를 보호했다.

 

갑신(甲申1644)년에는 객지에서 병이 들어 위급하였는데 네가 또한 달려와 구하였으니 만약 본래 타고난 지성이 아니면 어떻게 이같이 하겠느냐.

 

 

그러나 내가 죽은 뒤에는 조선(祖先)의 제사를 이미 너에게 부탁한 바 있음으로 지하의 명혼이라도 오직 너만을 의지할 것이니 너는 마침을 삼가기 바란다.

 

슬프다 너 천추(天樞)는 부모를 섬긴 정성이 더욱 출윤(出倫)하여 친병에 손가락을 깨물어 신의 도움을 얻게 했다.

 

그리고 3년 뒤 상을 당하여 또다시 손가락을 깨물어 부모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여 사람들을 경앙케 하였다.

 

 

또 천회(天會), 천상(天相)도 사친하는 정성이 하늘에서 타고나 향린이 공경하니 천성을 지킴이 이보다 무엇이 크리오.

 

이제 여러 질손들은 이를 본받아 지성으로 효도한다면 선친의 가르침을 떨어뜨리지 아니할 것이니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