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행원사람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의산 안홍천선생 동영상...
오래전에 의산 안홍천선생께서 가끔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나 죽으믄 굿좀 볼 것이다."...라고 하셨죠...
얼마전 장흥위씨족보편찬준비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장흥에서 회의후 식사시간에 족보편찬준비위원인 장흥 문화원 위종만 사무국장으로부터 의산 안홍천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촬영된 동영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봤습니다...
등장하시는 분은
의산 안홍천선생, 화당 위성일전교(장흥위씨 도문회의 전신인 장흥위씨 하산문계의 문계장 역임), 이상구 전장흥문화원장등
여러분이 나오십니다. 아시는 분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차분히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탁마재 재치...
https://youtu.be/LlIjxeUS_7s
의산 안홍천선생 동영상...
오래전에 의산 안홍천선생께서 가끔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나 죽으믄 굿좀 볼 것이다."...라고 하셨죠...
얼마전 장흥위씨족보편찬준비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장흥에서 회의후 식사시간에 족보편찬준비위원인 장흥 문화원 위종만 사무국장으로부터 의산 안홍천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촬영된 동영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봤습니다...
등장하시는 분은
의산 안홍천선생, 화당 위성일전교(장흥위씨 도문회의 전신인 장흥위씨 하산문계의 문계장 역임), 이상구 전장흥문화원장등
여러분이 나오십니다. 아시는 분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차분히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탁마재 재치...
https://youtu.be/LlIjxeUS_7s
1993년대 초 촬영했던 그 당시 안홍천(安洪天) 선생 98세 (죽음준비) 장흥문화원에 보관중이던 비디오 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해 영상 파일을 장흥문화원 youtube 업로드 합니다. 고인은 장흥읍 행원마을로 참 귀중한 영상입니다. 안중근 사당 장흥 '해동사'는 1955년에 장흥 유림과 죽산안씨 문중의 발의로 건립하게 됐다. 유림대표로 죽산안씨 의산 안홍천(義山 安洪天, 1895~1993.10)이 주도를 했다.
■고 안홍천선생 영상 촬영 시말
■때 : 1993년 여름
■나오는 사람 :
▪고 안홍천(당시 98세)
▪고 이상구 원장(당시 문화원장)
▪고 위성일(마을주민, 당시 향교전교)
▪윤수옥 전 문화원장 ▪양기수 전 문화원 이사
■촬영 : 김상찬 (당시 문화원 운영위원)
■카메라 : 일본제 히다찌 비디오 카메라
■내용 : 당시 안홍천 옹은 본인의 죽음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실제 가묘를 3번이나 옮기고,만장(만사) 370(? 화면 확인필요)여장을 지인들(윤수옥 원장 등)에게 써달라고 하여 보관하고 그 만장을 노끈으로 매달기 위해 노끈과 신이대나무, 기둥역할을 하는 장대나무 등 을 준비하고 본인이 타고 갈 상여를 32명이 메는 전통상여로 준비하고 관은 오동나무 관으로 준비하여 대청마루에 보관하고 관을 덮는 명정은 빨간 비단천에 금색 수를 떠서 준비하고 아들들과 손자들이 입을 상복인 굴건제복을 준비하여 포장하여 각각의 이름을 써놓고 부고를 미리 써놓고 이를 기록할 공책에 색인부를 만들어 놓고 장례때 일가 친척과 당군들이 쓸 두건을 400장 접어서 보관하고 .이를 철저히 하기 위해 달력 3장을 붙여 장례행렬도를 그려 32명이 메는 상여에 기생 2명이 앞에 타고 뒤에는 자손들과 유림들이 줄을 잡고 따르게 했다.이듬해 1994년 안홍천 선생이 99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신식 문물을 접한 아들 등 자손들을 그 준비를 무시하고 검정 양복에 완장을 두르고 장흥에는 없는 장의차를 이용하여 신식으로 장례를 치루고 말았다. 영상 쵤영소식을 들은 광주의 향토사 연구자들은 이 시대 마지막 유림이 가는 것을 방송 등에 알려 촬영하게 하고 당시 찍은 영상을 삽입하여 자료로 남기려 하였으나 현대식 장례로 무산되고 말았다.
영상 변환은 현)장흥문화원 김상찬 이사님이 수고해 주셨다.
■고 안홍천선생 영상 촬영 시말
■때 : 1993년 여름
■나오는 사람 :
▪고 안홍천(당시 98세)
▪고 이상구 원장(당시 문화원장)
▪고 위성일(마을주민, 당시 향교전교)
▪윤수옥 전 문화원장 ▪양기수 전 문화원 이사
■촬영 : 김상찬 (당시 문화원 운영위원)
■카메라 : 일본제 히다찌 비디오 카메라
■내용 : 당시 안홍천 옹은 본인의 죽음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실제 가묘를 3번이나 옮기고,만장(만사) 370(? 화면 확인필요)여장을 지인들(윤수옥 원장 등)에게 써달라고 하여 보관하고 그 만장을 노끈으로 매달기 위해 노끈과 신이대나무, 기둥역할을 하는 장대나무 등 을 준비하고 본인이 타고 갈 상여를 32명이 메는 전통상여로 준비하고 관은 오동나무 관으로 준비하여 대청마루에 보관하고 관을 덮는 명정은 빨간 비단천에 금색 수를 떠서 준비하고 아들들과 손자들이 입을 상복인 굴건제복을 준비하여 포장하여 각각의 이름을 써놓고 부고를 미리 써놓고 이를 기록할 공책에 색인부를 만들어 놓고 장례때 일가 친척과 당군들이 쓸 두건을 400장 접어서 보관하고 .이를 철저히 하기 위해 달력 3장을 붙여 장례행렬도를 그려 32명이 메는 상여에 기생 2명이 앞에 타고 뒤에는 자손들과 유림들이 줄을 잡고 따르게 했다.이듬해 1994년 안홍천 선생이 99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신식 문물을 접한 아들 등 자손들을 그 준비를 무시하고 검정 양복에 완장을 두르고 장흥에는 없는 장의차를 이용하여 신식으로 장례를 치루고 말았다. 영상 쵤영소식을 들은 광주의 향토사 연구자들은 이 시대 마지막 유림이 가는 것을 방송 등에 알려 촬영하게 하고 당시 찍은 영상을 삽입하여 자료로 남기려 하였으나 현대식 장례로 무산되고 말았다.
영상 변환은 현)장흥문화원 김상찬 이사님이 수고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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