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소재백련사의 약사전 내부에 걸린위홍원 근기 편액 판독내용

HL3QBN 2022. 6. 20. 07:44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소재
백련사의 약사전 내부에 걸린
위홍원 근기 편액 판독내용

이글은 야운 위이환종친이 쓰신것으로 얼마전 필자가 올린 백련사 약사전 편액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일요일에 직접 홍은동 백련사를 방문 답사하여 편액의 존재을 확인하고 편액을 판독하고 번역한 내용으로 직접 올리기에는 본인이 여려워(창피해...^^) 하셔서 필자가 대신 올립니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316-1
삼각산 정토 백련사 일주문
아미타불이 서방 정토의 부처라면 약사불은 동방 정토의 부처이다. 법당 내의 약사불은 보통 선정인을 취하고 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뒤의 탱화는 약사불의 정토를 표현한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가 봉안된다.
약사불은 석가모니불 미륵불 아미타불과 함께 4대 신봉불로 약사불이 특히 질병을 낫게 해준다.
약사전 내부에 걸린 편액이었다. 위치는 약사불이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벽면 위에 걸려있었다. 이를테면 약사전 들어가는 가운데 문 위에 있다. 藥師殿 편액 뒤벽면(내부)에 걸려있다.
西方淨土 白蓮寺 藥師殿 揭示 扁端 飜譯文

康熙 戊子年 五月 우리 五世 할아버님 諱 壽字 億字께서 우연한 기회에 서쪽 교외로 나가셨다가 두 손으로 물을 움켜쥐고 손을 씻든 중에 손가운데 연마된 돌이 만져지매 돌은 부처님 두상과 같음으로 놀랍고 송구한 마음으로 돌아온 이후에 목욕재계하고 두 石佛을 굴착해서 얻었다.

二位의 석불은 장엄하고 엄숙하며 정교하게 깍아 조각했음이 새로히 만든 것이나 진배없었다.

기이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음으로 백련사에 모시고 스님 敬海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경건하게 받들게 함은 물론 매년 10월 8일과 15일에 큰재(大醮)를 베풀어 모셔 흠향토록 한지가 지금까지 二百餘年이 지났다.

약하고 어린 자손들이 바꾸지 않고 받들어 모셔왔음이 어찌 부처님께서 조용히 도와주셨음이 아니겠는가.

옛적에 蘓東坡는 네 분의 보살화상을 모아 설치하여 받들어 모시고 글을 지어 기록한 바는 그의 아버지 老泉을 위하여 베푼 까닭이다 라고 하였다.

이젠 내가 받들고저 하는 것은 화상에 대하여 말하거나 나의 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 魏家는 이미 영원한 세월인연을(永世之緣) 맺었음으로 다행하게도 한없는 덕을(無量之德) 입어왔지 않았겠는가.

이제 大醮를 올리는 날에 그 내력들(始末)을 기록 편액들(扁端)을 게시하여 大衆으로 하여금 알게 하고저 하는 바이며 나는 이에 관한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我非門外漢) 이르는 바이다.

光緖 十二年 丙戌 正月

魏洪源 謹記
主僧 石雲
奉硯 敬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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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康熙(1662~1722) 戊子年(1708년)
주2 : 光緖(1875~ 1908) 丙戌年(1886년)

주3 : 백련사는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백련산(白蓮山)에 있는 사찰이다. 747년(경덕왕 6)에 진표(眞表)가 창건하여 정토사(淨土寺)라 했다.

이 사찰은 기록에 의하면 화재로 소실되어 두 번에 걸쳐 중건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62년에 중건했고 또 1701년(숙종 27) 화재로 소실되어 그 다음해에 중건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에 걸쳐 중창불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 편액 내용으로 보면 1701년경 백련사 중건 이후에 魏壽億이란 분이 석불 2위를 우연하게 습득하여 시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이백여년(178년)이 지난 1886년에 위수억의 5세손으로 추정되는 위홍원이란 분이 선대조상인 위수억이 석불 2위를 중창불사했다며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근기하여 편액으로 제작해 약사전 내부에다 걸었다.

주4 : 2009년 11월 9일 대종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게재된 글이다. 위기철과 위세환이라는 분이 올렸다. 이를 최근에야 알고 백련사를 직접 가서 파악해봤다.

야운 위이환 답사와 판독 그리고 글쓰기...
재치 위현동 대신 글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