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寶沙門(천보사문, 편자 김규정) 위문관련 시문(1)
祝舍弟文凱就官韻(축사제문개취관운)
아우 위문개가 벼슬길에 오른 일을 축하한 시.
원감국사 복암충지(圓鑑國師 宓庵沖止)(1226 ~ 1293)
黃金榜首吾曾占(황금방수오증점)
황금 방 수석은 내 일찍 차지했으니
丹桂巍科子亦收(단계외과자역수)
단계의 높은 가지 그대 또한 얻었구나.
千萬古來稀有事(천만고래희유사)
이는 천고만고토록 드문 일이라
一家生得二龍頭(일가생득이용운)
한 집안에서 용두가 둘씩이나 나왔단다.
注)
丹桂巍科(단계외과) - 단계(丹桂)는 과거급제를 뜻하고 외과(巍科)는 장원급제를 뜻한다.
龍頭(용두) - 문과(文科)의 장원. 고려 때 문과 장원급제자들의 모임을 용두회(龍頭會)라고 했다.
@ 壯元峰(장원봉) - 府主山西峯魏壯元元凱文凱所居故名之其季弟信凱亦登第其時人詩曰 未知岩下如斗舍養得天地㡬箇龍 其後鄭壯元再春亦居其下 <長興誌>
장흥부 주산 서봉은 위 장원 원개와 문개가 살던 곳이라서 "장원봉"이라 했다. 그 막내아우 신개도 등제하자 그 당시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바위 아래는 조그마한 집 같지만 세상에 몇 사람의 용을 길러낼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후 정 장원 재춘(조선조 경종 때 문과장원)도 그 아래서 살았다.
# 원감국사 복암 충지(圓鑑國師 宓庵沖止 고려 고종13년1226~고려 충렬왕19년1293)
속성은 장흥 위씨(長興魏氏). 이름은 위원개(魏元凱). 법명은 법환(法桓), 改名은 충지(沖止).自號는 복암(宓庵). 長興府 府內坊 출신이다.
19세 때(고려 고종31년1244) 문과(文科)에 장원(壯元)급제하여 한림학사와 추밀원부사를 지냈다. 29세에 선원사(禪源寺)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서 승려가 되었다.원오(圓悟)의 법을 이어 조계산(曹溪山) 제6세 국사이다. 시호(諡號)는 원감국사(圓鑑國師)이고 탑호(塔號)는 보명(寶明)이다. 세수는 67세이고 법랍은 39년이다.
조선조 서거정 등에 의해 편찬된 <東文選>에서는 승려로서 가장 많은 시문을 남겼다.
재치...
사족 : 장원봉은 장흥읍 남동리에 위치한 법원, 검찰청과 교촌리 향교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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