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위 어찌 다행히 선진연대 빠졌나/기상 높은 이 정자 중천에 우뚝 솟았다. 서로 가면 깎아지른 벼랑 촉도 오르고/동쪽 보면 먼 바다 오나라 해변 가깝다. 此岩何幸漏秦年 屹屹斯亭等半天 西步危崖登蜀道 東膽遠海近吳邊
천층 절벽 언덕 소나무에는 학이 살고/십리 시내 고요한 물결에 새들 노닌다. 사인어른 지난 행적은 오늘 같으니/그 누가 주인 되어 또 선인께 감사하나. 畔松捿鶴天層壁 平浪沙鷗十里川 舍人往蹟如今日 其主爲誰也感先/靈光金氏舍人亭韻
이 시는 조선 세종때 의정부 검상사인, 전라도감찰사, 이조참판을 지내다 단종때에(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그만 두고 낙향을 한 영광 김씨인 김필이 이곳 강가에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는 뜻으로 겨울이면 설암벽에 단종의 진영을 그리면서 그 옆에 사인정(舍人亭)을 지은 곳에 모암재(帽巖齋) 위계철(魏啓哲 1840 헌종6~1913)이 들려 읊은 시다. 정자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진흥로 891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전남 장흥군 장흥읍 행원리(杏園里)이 출신으로 1896년 유도천(儒道薦)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자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용반1길 213-34에 있는 효를 위한 정자 용호정(龍湖亭)에도 들려 시에 차운하다.(夫山面龍湖亭韻)
돌 비탈 걸린 소루 수궁이 가깝고/신선 같은 나그네 자리 그 속에 있네. 수풀 속 초부노래 소리마다 옥이고/개울가 고기 잡는 불 햇불마다 잘 탄다 懸壁小樓近水宮 如仙客子坐其中 樵歌樹裏聲聲碧 漁火灘頭点点紅
온종일 고요한 심정 바람은 대 흔드니/맑은 밤 높은 성가 달은 오동을 낳네. 이 용호에 함께 즐기는 자리 있으니/한쪽은 소년이고 한쪽은 늙은이라네. .鎭日幽情風送竹 淸宵高價月生桐 有是龍湖同樂席 一邊年少一邊翁
용호정(龍湖亭)은 1829년(순조29) 자가 여형인 호은(湖隱) 최규문(崔奎文 1794~1854)이 부친을 위해 지은 정자로 조선시대 효자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최규문의 아버지 영택(榮澤)의 묘가 강건너 기산(騏山) 북쪽에 있어 비가 와서 강물이 넘치면 성묘를 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바라만 보며 명복을 빌었는데 이를 안타까이 여긴 아들 규문이, 부친을 위해 탐진강변에 용호정을 세웠는데, 이는 규문의 부친에게는 “부친을 바라보는 정자요(望親之亭)” 규문에게는 “부친을 위로하는 정자(慰親之亭)”라 부른다.
탐진강 북안에 세워진 용호정은 10m 아래에 강이 흐르고 해발 높이 250m의 기역산이 남서방향에 멀리 솟아 있어 산수경관은 정내에서나 정외의 강안에서 보나 매우 수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