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미상의 맹견도(猛犬圖)...
‘맹견도(猛犬圖)’, 작자미상, 종이에 수묵채색, 44.2×98.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① 맹견도가 발견된 시기와 장소 그리고 발견자
맹견도는 1910년대에 서울 북촌의 한 고가(古家)에서 집수리를 하기 위해 집안의 가재도구를 마당에 내놓은 것 중에 이 그림이 눈에 띈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굵은 쇠사슬에 묶인 맹견 한 마리가 바닥에 배를 깔고 조용히 엎드려 있는 그림인데, 발견자는 그때까지 본 동양화와 달리 개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했고 터럭이며 골격의 구조가 살아있는 개의 모습 그대로로 마치 실제 개를 보는 듯 했습니다.
맹견도를 발견한 사람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양화를 도입한 고희동(高羲東) (1886-1965)으로 일본 동경미술학교 양화과에서 수학하고 귀국후 중학교 미술 교사로 근무하다가 민족미술단체인 서화협회를 발족 하기도 하였으며 광복이후 국전(國展)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② 맹견도가 김홍도의 작품이 된 경위
고희동은 북촌의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어느 고가(古家)에서 우연히 발견한 맹견도 그림이 예사 작품이 아니기에 당시의 스승인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1861-1919),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 을 비롯하여 활동하던 대가(大家) 몇몇에게 맹견도를 보여주고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그림일까? 하지만 화가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낙관이 없었습니다. 그림뿐이었습니다. 결론은 품격 등으로 볼 때 이 정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단원 (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아니면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③작가 위조로 혼란을 겪게 됨
고희동(高羲東)은 맹견도를 김홍도(金弘道)의 자(字)인 사능(士能)과 김홍도(金弘道)라는 낙관(落款)을 새겨 찍었던 것이다. 당시에 고가(高價)를 받고 어느 화상(畵商)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이 맹견도는 김홍도의 작품으로서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 중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게재되면서 김홍도 작품이라고 명시하였으니, 당시의 학생들은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게 된 것입니다. 진실이 아닌 것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죠. 전문가들이 그림에 대하여 의문된 점이 있어 진위논란을 제기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위조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때 맹견도를 소유하고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측은 작가 김홍도에서 작가(作家) 미상(未詳)으로 정정(訂正)하게 되었습니다.
④맹견도의 작품성
‘맹견도’는 서양화에 익숙한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묘사력이 뛰어납니다. 시무룩한 개의 표정, 생생한 터럭과 골격, 건물의 기둥과 마룻바닥의 처리까지 전통적인 동양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실감나는 화법입니다. 게다가 개의 골격에 갈색의 농도을 더해서 살린 입체감과 사실감도 일품입니다. 뿐만 아니라 건물과 마룻바닥에 사용한 명암법과 투시법도 현장감을 더했습니다. 역시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은 김두량의 ‘흑구도(견도,긁는개)’ 보다 묘사력 면에서 좀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그림이 유화가 아니라 수묵채색화라는 점입니다. 수묵채색으로 그렸지만 서양화의 표현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맹견도는 관찰력이 대단하며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으로 구도를 보면 화면의 공간에 비해 주제가 너무 큰 것은 아마 원래의 그림에서 누군가가 테두리를 조금 잘라 낸것 같습니다. 구성을 보면 앞다리위에 얼굴을 얹어 놓고 부릅뜬 두 눈이 사나운 맹견임을 입증하고, 꼬리를 휘어서 뒷다리를 돌아 배 앞에다 살짝 놓아둔 형태, 마루의 바닥의 이음새와 기둥의 표현에 원근법을 사용하였고, 명암표현에서 마루의 바닥에 몸체의 음영(陰影)을 표현했으며, 다리 근육의 볼륨, 몸체의 표피가 겹겹이 주름져있는 양감, 개의 길쭉한 얼굴의 눈과 코, 입의 비례와 적절한 원근감과 양감 표현, 짧은 터치로 부드럽게 털의 질감을 적절하게 묘사한 점 등이 완전한 서양화 기법입니다. 다만 채색을 수묵담채로 칠했습니다.
조선 후기의 김두량의 작품중에 ‘견도(犬圖)’나 ‘삽살개’ 그림의 동세(운동감), 명암 표현 등이 서양화 기법에 가까운 기법을 사용한 점이 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양화입니다. 반면에 맹견도는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완벽한 서양화기법입니다.
⑤맹견도를 우리나라 화가가 그렸을까?
여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서양화 기법이 가미된 김두량의 흑구도(견도,긁는개)나 삽살개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김두량이 활동한 시기가 영조(英祖)시대이니 그 때에 우리나라도 서양화 기법이 전래되었다고 보여지며. 그 경로는 청나라로부터 사신이나 여러 경로를 통하여 선물 등으로 화첩이 유입되어 전래된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또한 맹견도의 견종은 불독(??)으로 우리나라에는 없는 품종으로 볼 때. 우리나라 화가가 청나라에 가서 직접 그리지 않는한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극단적인 경우로 청나라에서 유입된 그림을 보고 모사(模寫)한 것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고 서양화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가 1905년 이후라고 보면 이 맹견도와는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견된지 1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전히 의문투성입니다.
재치(財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