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야기

[조용헌 살롱] [1052] 犬儒學派와 불도그...(조선일보 20160808 A33)

HL3QBN 2016. 8. 15. 16:49

고대 희랍에 견유학파(犬儒學派· Cynics)가 있었다. 학파 이름치고는 특이하다. 왜 이름에 하필 개 견(犬)자를 넣어야만 했을까.

견유학파의 대표적 인물이 디오게네스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만나러 와서 '뭐 도와드릴 거 없느냐'고 물었을 때 '햇볕 가리지 말고 자리 비켜주시오'라고 했던 철인이다. 견유학파는 '개처럼 사는 생활'을 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디오게네스는 집도 절도 없이 통속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뚜렷한 거처 없이 개처럼 여기저기 얻어먹으면서 살았던 모양이다. 견유학파는 행복이 물질적 소유에 있지 않다고 여겼다. 무소유와 금욕적인 생활. 자기 내면의 자긍심에서 행복을 찾았다. 디오게네스가 살았던 고린도는 사치와 매춘부가 범람하던 도시였다. 그는 매춘하러 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개를 봐라. 교미를 할 때 다 보는 데서 하지 않느냐. 그런데 인간들은 왜 안 보이는 데 가서 섹스를 하느냐. 기왕 할 것이면 개처럼 보이는 데서 해라'고 주장하였다. 이중적인 위선을 질타했던 것이다.

견유학파의 주장을 들어보니까 '개'로부터도 배울 것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필자가 배울 만한 개라고 주목한 개는 잉글리시 불도그다. 불도그는 그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아주 멍청한 표정이라고나 할까. 코도 납작한 데다가 이빨도 듬성듬성 난 것 같고, 평소에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입을 헤벌리고 있다. 못생긴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불도그의 이 멍청한 표정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예쁘게 보이려고 인간은 온갖 치장을 다 하는데 불도그는 이 과도한 치장을 포기한 모습이기 때문일까. 행동도 아주 느리다. 옆에 낯선 사람이 가도 쉽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 눈만 살짝 떴다가 다시 눈을 감고 누워 버린다. 태연자약하다. 온갖 근심 걱
정에도 불구하고 저 불도그처럼 태연자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히 대인의 풍모를 느낀다.

그리스의 섬들을 돌아다니다가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미코노스섬에 들렀을 때였다. 붉은 석양이 지던 항구에서 구멍 난 청바지를 입은 중년 남자가 색소폰을 불며 구걸하고 있었다. 동전이 들어 있는 주인의 모자 옆에 무심하게 앉아 있던 불도그의 표정이 뇌리에 남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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